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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정몽주

고려 말기 문신 겸 학자.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하였으며, 성리학에 밝았다.《주자가례》를 따라 개성에 5부 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꾀했다. 시문에도 뛰어나 시조〈단심가〉외에 많은 한시가 전해지며 서화에도 뛰어났다.
본관 영일(迎日). 자 달가(達可). 호 포은(圃隱). 초명 몽란(夢蘭)·몽룡(夢龍). 시호 문충(文忠). 영천(永川)에서 태어났다. 1357년(공민왕 6) 감시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 예문검열(藝文檢閱)·수찬·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냈으며, 1363년 동북면도지휘사 한방신(韓邦信)의 종사관으로 여진족(女眞族) 토벌에 참가하고 1364년 전보도감판관(典寶都監判官)이 되었다.이어 전농시승(典農寺丞)·예조정랑 겸 성균박사(禮曹正郞兼成均博士)·성균사예(成均司藝)를 지냈고, 1371년 태상소경보문각응교 겸 성균직강(太常少卿寶文閣應敎兼成均直講) 등을 거쳐 성균사성(成均司成)에 올랐으며, 이듬해 정사(正使) 홍사범(洪師範)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1376년(우왕 2)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으로 이인임(李仁任) 등이 주장하는 배명친원(排明親元)의 외교방침을 반대하다 언양(彦陽)에 유배, 이듬해 풀려나와 사신으로 일본 규슈[九州]의 장관에게 왜구의 단속을 청하여 응낙을 얻고 잡혀간 고려인 수백 명을 귀국시켰다.1379년 전공판서(典工判書)·진현관제학(進賢館提學)·예의판서(禮儀判書)·예문관제학·전법판서·판도판서를 역임, 이듬해 조전원수(助戰元帥)가 되어 이성계(李成桂) 휘하에서 왜구토벌에 참가하였다. 1383년 동북면조전원수로서 함경도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 다음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라 성절사(聖節使)로 명나

트리파 알라 로마나

트리파 알라 로마나

소 내장을 토마토 소스에 부드럽게 익혀 치즈와 함께 먹는 이탈리아 요리
소 내장을 토마토 소스에 부드럽게 익힌 후 치즈와 함께 먹는 이탈리아 요리이다. ‘트리파 알라 로마나(trippa alla romana)’는 ‘로마식 소 내장 요리(Roman style trip)’라는 뜻으로 요리명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에서 기원한 음식이다. 역사 과거 이탈리아에서 소 내장은 왕족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먹지 않는 식재료로서 늘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소 내장을 ‘낀또 꽈르토(quinto quarto)’라고도 부르는데 직역하면 ‘네 등분 중 다섯 번째’라는 뜻이다. 과거 소고기 부위를 왕족과 성직자, 귀족, 군인 네 계층이 나누어 갖고 남은 자투리 부위를 서민들이 먹은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즐기는 대중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조리법 소 내장은 우선 찬물에 한시간 이상 충분히 담궈서 불순물을 빼준 뒤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푹 끓여둔다. 팬에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르고 다진 마늘과 양파를 볶다가 한 입 크기로 썬 셀러리도 넣고 볶는다. 소 내장이 부들부들해지면 건져내 물기를 뺀 뒤, 야채를 볶던 팬에 넣고 함께 볶는다. 화이트 와인을 넣고 알코올이 날라가면 토마토 소스를 첨가하며 간이 부족할 경우 소금을 추가한다. 토마토 소스가 소 내장에 충분히 스밀 때까지 익힌 후 접시에 담아낸다. 마지막으로 파마산 치즈와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올려 요리를 완성

마야 예술의 비길 데 없는 걸작, 팔렌케 유적

마야 예술의 비길 데 없는 걸작, 팔렌케 유적

멕시코 유카탄 반도 남부, 치아파스(Chiapas) 주에 위치한 마야 유적. ‘비문의 신전’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과 조각을 통해 수준 높은 마야 문명을 엿볼 수 있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멕시코 치아파스 주 우수마신타(Usumacinta) 강 중부 유역에 위치한 팔렝케 유적은 티칼(Tikal)이나 코판(Copán) 등 다른 마야 유적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가장 수준 높은 건축물과 조각품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중심부는 500×300m 크기이며 주위 10km에 걸쳐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팔렝케란 스페인어로 ‘울타리로 둘러싸인 성채’라는 뜻이다. ‘견고한 집들이 있는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오툴룸(Otolum)이라는 현지어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것이다.유적지는 기원전 300년경에 처음 세워졌으며, 전성기인 6∼8세기에는 우수마신타 강 분지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장문의 비문(碑文)을 비롯해 이곳에서 발견된 마야 문자가 80% 이상 해독되어 당시 문화가 많이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대략 10세기 말에 이민족의 침략을 받은 뒤 방치되었고, 이후 약 800년간이나 열대의 숲 속에 감춰져 있었다. 유적은 1784년에 처음 발견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부터이다.가장 유명한 유적은 1952년 발굴된 ‘비문의 신전’이다. 9층 피라미드 위에 건축된 신전으로 전성기의 통치자 키니치 하나브 파칼(K'inich Janaab' Pakal) 1세가 지었다. 피라미드의 밑변 길이는 65m이며 높이는 신전을 포함하여 21m이다.신전 지하에서 완벽하게 보존된 파칼 왕의 묘가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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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국립공원

월악산국립공원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寒水面)과 덕산면(德山面)의 월악산을 중심으로 한 국립공원.
면적 287.977㎢이다. 1984년 12월 3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국립공원의 중심을 이루는 월악산(1,097m)은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과 한수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지만, 국립공원은 제천시·충주시·단양군, 경상북도 문경시 등 4개 시·군에 걸쳐 있다. 북쪽에는 충주호가 공원 북쪽면을 휘감아 돌고, 동쪽에는 단양팔경과 소백산국립공원, 남서쪽에는 문경새재와 속리산국립공원이 있다.월악산은 삼국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이라 불렸고, 군대가 주둔하기도 한 전략상의 요충지였다. 소백산맥의 포암산(布岩山:962m) 부근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지맥의 끝에 솟아 있으며, 주봉인 영봉(靈峰:일명 국사봉)에 오르면 사면의 절경이 발 아래로 보인다.공원 안에는 월악산 영봉과 문수봉(1,162m),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는 하설산(夏雪山:1,028m)을 비롯해 황장산(黃場山:1,077m)·대미산(大美山:1,115m) 등 1,000m가 넘는 고봉이 많다. 또 남한강의 지류인 광천(廣川)이 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가로질러 충주호로 들어가고, 달천(達川)이 월악산 서쪽을 흘러 역시 충주호로 들어간다. 명승지로는 동서로 8㎞에 이르는 송계계곡과 16㎞에 이르는 용하구곡(用夏九曲), 선암계곡 등이 꼽히며, 월광폭포(月光瀑布)·자연대(自然臺)·망폭대(望瀑臺)·수경대(水境臺)·학소대(鶴巢臺) 등도 유명하다.그 밖에 덕주사(德周寺)·산성지(山城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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