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통합검색

메인 주요 글

주요 아티클

걸프전쟁

걸프전쟁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영국·프랑스 등 34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이라크·쿠웨이트를 무대로 전개된 전쟁이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1991년 2월 28일 다국적군의 승리로 종결된 전쟁이다. 전쟁의 원인은 이라크의 경제적 어려움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란-이라크의 전쟁을 겪으면서 이라크는 피폐해진 경제로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게다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쿠웨이트와는 인근 쿠메일라 유전지대를 놓고 소유권을 주장하며 분쟁이 발생하였다. 이라크는 쿠웨이트가 자신들의 석유를 훔쳐가는 것으로 여겼고 더구나 쿠웨이트가 원유시장에 물량을 과잉공급하여 유가를 하락시킴으로써 이라크 경제를 파탄에 몰아넣었다고 비난하였다.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은 1990년 8월 2일 이라크 공화국수비대를 주축으로 하는 30만명의 병사를 동원하여 쿠웨이트를 전격 기습 침공하여 점령하였다. 쿠웨이트는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으로 전혀 방어할 수 없는 상태였고 사전에 이라크의 침공을 예상하지도 못했다. 이라크의 기습은 매우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쿠웨이트 공항과 항만 등 주요거점이 되는 곳을 점령했으며 쿠웨이트 군은 흩어졌다. 쿠웨이트 다스만궁에서 마지막 수비대가 저항하며 버텼지만 이라크의 탱크의 공격을 받고 함락되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19번째 속주(屬州)로 삼아 통치권을 행사하였다.

이라크의 침공 직후 쿠웨이트 왕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하여 망명정부를 수립하였다.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알메하스 로메스코

알메하스 로메스코

로메스코 소스에 조개를 첨가하여 익힌 뒤 소스에 절여낸 음식으로 스페인의 조개 요리이다.
스페인어로 ‘알메하(almeja)’는 조개를, ‘로메스코(romesco)’는 로메스코 소스를 가리켜 알메하스 로메스코(almejas romesco)라 하면 로메스코 소스를 첨가한 조개 요리를 의미한다. 이때 로메스코 소스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타라고나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소스로, 피멘토(pimento; 붉은 파프리카)와 견과류, 브랜디 등을 첨가하여 만든다. 상큼하면서 고소한 맛이 나는데 주로 해산물 요리에 곁들여 먹는다. 주재료인 조개는 주로 ‘리틀 넥 클램(Little neck clam)’, ‘마닐라 클램(Manila clam)’과 같은 작은 크기의 조개가 쓰인다.

조리법

조개는 작은 것으로 준비하여 깨끗이 해감한다. 먼저 로메스코 소스를 만든다. 캐서롤에 올리브유를 두른 뒤 잘게 자른 피멘토를 넣어 볶는다. 이것을 푸드 프로세서에 넣어 갈아준다. 고추를 볶았던 오일을 데운 뒤, 슬라이스한 바게트와 마늘을 넣어 골고루 구워낸다. 푸드 프로세서에 구워낸 빵과 마늘을 추가하고 여기에 아몬드를 넣어 되직한 질감이 될 때까지 갈아준다. 여기에 생선 육수와 화이트 와인을 첨가하여 부드러운 질감이 되도록 만든다. 캐서롤에 갈아둔 혼합물을 넣고 잘 저어주고 여기에 고춧가루와 소금, 후추를 넣어 간을 한다. 여기에

사막 한가운데 있는 바위왕국, 페트라

사막 한가운데 있는 바위왕국, 페트라

요르단 남부에 있는 대상 도시유적.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산악도시이다. 나바테아인은 BC 7세기부터 BC 2세기경까지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활약한 아랍계 유목민으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사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에 도시를 건설한 후 생활하였다.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 등의 교차지점에 위치하여 선사시대부터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여 번영을 누렸다.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서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 도시 못지않은 도시가 있다. 협소한 통로와 협곡으로 둘러싸인 바위산을 깎아 조성된 페트라의 건물들은 대부분 암벽을 파서 만들어졌다. 이곳은 BC 1400~1200년 경 에돔과 모압의 접경지에 자리했으며, 구약에서는 '에돔의 셀라'라고 지칭하고 있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를 의미하고, 셀라도 히브리어로 '바위'를 뜻하니 페트라는 바위의 도시인 셈이다. 또한 이곳은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던 모세와 그 추종자들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통로이기도 했다. BC 7세기 무렵 유목생활을 하던 나바테아인이 페트라를 중심으로 정착하면서 나바테 문명이 세워졌다. 106년에는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땅을 빼앗겼다가, 하드리아누스가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하드리아누스의 페트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후 6세기경 발생한 지진에 의해 도시 전체가 폐허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812년 탐험가 부르크하르트가 잊혀진 페트라 도시를 발견하였고, 이후 그의 여행기를 통해 페트라가 유럽에 알려졌다. 이곳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더불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가 되었으며,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국의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이 페트라를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노래한 바 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배"(1989)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진 바 있다.

슬라이드 바로가기

포토커뮤니티

지구촌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