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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대첩

한산도대첩

1592년(선조 25)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전투.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1592년(선조 25) 5월 29일부터 제2차로 출동한 이순신의 수군은 6월 10일까지 사천 선창(泗川船艙)·당포(唐浦)·당항포(唐項浦)·율포해전(栗浦海戰) 등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육지에서는 계속 패전의 소식만이 들려왔다. 그렇게 되자 적은 해상에서도 다시 머리를 쳐들기 시작하여 가덕도(加德島)와 거제도(巨濟島) 부근에서 적선이 10여 척에서 30여 척까지 떼를 지어 출몰하면서 육군과 호응하고 있었다.이런 보고를 접한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 이순신은 우수사(右水使) 이억기(李億祺)와 연락하여 재차 출동을 결정하였다. 이때 일본은 해상에서의 패전을 만회하기 위하여 병력을 증강하였다.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의 제1진은 70여 척을 거느리고 웅천(熊川) 방면에서 출동하였고,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의 제2진은 40여 척을, 제3진의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도 많은 병선을 이끌고 합세하였다. 이에 이순신은 7월 6일 이억기와 더불어 49척을 거느리고 좌수영을 출발, 노량(露梁)에 이르러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의 함선 7척과 합세하였다. 7일 저녁 조선 함대가 고성(固城) 땅 당포에 이르렀을 때 적함 대·중·소 70여 척이 견내량(見乃梁)에 들어갔다는 정보에 접하고 이튿날 전략상 유리한 한산도 앞바다로 적을 유인할 작전을 세웠다.한산도는 거제도와 고성 사이에 있어 사방으로 헤엄쳐나갈 길도 없고, 적이 궁지에 몰려

프레골라

프레골라

이탈리아 사르데냐주에서 기원한 크기가 작고 견과류의 향미를 느낄 수 있는 파스타로, 이탈리아의 수프 요리인 ‘프레굴라 콘 아르셀레(Fregola con arselle)’에 쓰인다.
이탈리아 사르데냐주에서 기원한 파스타로, 프레굴라(fregula)라고도 한다. 프레골라는 이탈리아어의 동사인 ‘fregare’에서 유래하여 ‘비비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파스타를 만들 때 손으로 비벼 만든 데서 연유한다.프레골라는 그 크기가 다양하나 일반적으로 지름이 2~3mm 정도로 아주 작은 크기를 가졌으며 견과류의 향미를 느낄 수 있다. 북아메리카의 쿠스쿠스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알갱이가 좁쌀만큼 작고 세몰리나를 활용한다는 점은 동일하나, 쿠스쿠스보다 딱딱하며 표면이 거친 편이다. 여기서 세몰리나(semolina)는 듀럼밀을 거칠게 간 밀가루를 뜻하며 파스타와 마카로니의 원료로 쓰인다. 프레골라는 세몰리나를 물과 함께 반죽하여 말린 뒤 구워내는 과정을 통해 고소한 향과 단단한 질감을 갖는다.프레골라를 만드는 방법은 우선 옅은 소금물과 세몰리나를 준비한다. 크고 넓은 그릇에 세몰리나를 넓게 펴준 뒤, 분무기로 소금물을 아주 조금씩 뿌려준다. 그릇을 흔들어 세몰리나가 물방울과 만나 제각각 작고 둥글게 뭉쳐지도록 한다. 그릇에 세몰리나를 흩뿌리듯 넣어주고 다시 한 번 분무기를 뿌려준 뒤 그릇을 흔든다. 손으로 원을 그리며 세몰리나를 굴려준다. 이 과정을 몇 번씩 반복하면 작고 둥근 프레골라의 모양이 만들어진다. 프레골라를 그늘진 곳에 놓고 딱딱하게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프레골라가 다 마르면 오븐에 넣어 구워낸

햄릿의 무대가 되다, 덴마크 크론보르성

햄릿의 무대가 되다, 덴마크 크론보르성

덴마크 동부 헬싱외르에 있는 성.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에 있으며 덴마크와 스웨덴의 경계이기도 하다. 덴마크인들이 16~18세기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덴마크 헬싱괴르(Helsongør) 시에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고성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무대로 유명한 곳이다. 한적한 바닷가 언덕 위에 서 있는 성은 웅장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왠지 외롭고 칙칙하다는 느낌을 준다. 햄릿의 무대였다는 이유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 역사적인 의의도 큰 곳이다. 바다 건너 스웨덴이 보이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16~18세기 북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덴마크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성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1574년 프레데릭 2세(Frederick II) 때이다. 1585년 웅장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공되었으나, 1629년 화재로 예배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크리스티안 4세(Christian IV)의 재건으로 1639년에 옛모습을 되찾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한 탓에 여러 차례 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그 때마다 보수 과정을 거쳐 1924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1658년 스웨덴의 침공으로 성이 함락된 뒤, 방어시설로서의 기능이 대폭 강화되었다. 견고한 수비벽에 외곽의 망루까지 덧붙여지면서 난공불락의 철옹성 같은 이미지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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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킨센스 오일

프랑킨센스 오일

유향나무의 수지(식물체의 분비물로 점도가 높은 비결정성 고체 또는 반고형 물질)에서 추출한 에센셜 오일로 정신을 집중하게 하고 깊은 호흡을 도와주어 호흡계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소말리아, 오만 등 아라비아 남부와 이프리카 동북부 지역이 원산인 유향나무에서 얻은 수지를 증기 증류법(수증기로 식물의 방향유효성분을 추출하고 냉각수로 식혀 응축하는 방법)으로 추출한 에센셜 오일이다. 엷은 황색 또는 녹황색의 액체이며 묵직하면서 달콤한 나무 향으로 미들 노트(중간 향)에 속한다. 원료 유향으로 알려져 있는 프랑킨센스는 유향나무의 수액을 건조시켜 얻은 것으로 불투명하면서 은색을 띨수록 품질이 좋은 것으로 여겨지며, 소말리아에서 약 80%를 생산하고 있다. 프랑킨센스의 어원은 ‘귀한(noble)’, ‘순수한(pure)’을 의미하는 옛 프랑스어인 ‘franc’와 ‘향’이라는 의미의 ‘incense’에서 유래하였다. 나무에 상처를 내면 우윳빛(젖빛)의 수지가 흘러나와 한자로 ‘유향(乳香)’이라 표기하고, 라틴어로 ‘기름(oil)’을 의미하는 ‘올레움(oleum)’과 ‘레바논, 유향’을 의미하는 ‘리바누스(líbănus)’ 를 합쳐 ‘올리바눔(Olibanum)’이라고도 부른다. 고대로부터 신성한 향기로 여겨 종교의식에 사용하었다. 이집트의 하트셉수트(Hatshepsut) 여왕과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되었고, 성서에도 20여 차례나 언급되었으며, 특히 예수 탄생 때 동방박사들이 황금, 유향, 몰약의 세 가지 예물을 바쳤다고 알려져 있다.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 중국에도 전파돼 약용과 향료로 사용되었다. 오래 전부터 아프리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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