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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박열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운동에 투신하였으며 비밀결사 흑도회를 조직하였다. 1923년 일본 왕을 암살을 실행하려던 중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박열의 초명(初名)은 준식(準植)으로 경상북도문경 출신이다.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운동에 투신하였으며 비밀결사 흑도회(黑濤會)를 조직하였다. 1923년 당시 그의 애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의 협조를 얻어 천황 암살을 실행하려던 직전에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천황 암살을 위해 해외에서 폭탄을 수입하려 했다는 것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으므로 1926년 3월 25일에 가네코와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4월 5일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두 사람이 일본검찰의 문초를 받을 때 서로 포옹하는 모습을 일본 판사가 촬영, 사진이 사회에 누출되자, 정부에서 국사범(國事犯)을 우대한다고 야당에서 들고 일어나는 등, 일본 정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였다.두 사람은 복역 중 결혼신고서를 구청에 제출하여 공식적으로 부부가 되었으나 가네코는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하고 박열은 1945년 8·15광복으로 22년 2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저서로 《신조선혁명론(新朝鮮革命論)》이 있으며,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바인 땟

바인 땟

찹쌀 반죽 위에 녹두와 돼지고기를 넣고 잎에 돌돌 말아 찜통에 쪄낸 원통형 모양의 찜요리로, 베트남의 신년음식이다.
찹쌀 반죽 위에 녹두 혹은 녹두와 돼지고기를 넣고 잎에 말아 쪄낸 원통형 모양의 떡이다. 베트남의 새해에 먹는 전통음식 중 하나로 남부 지역에서 특히 즐겨 먹는다. 이때 베트남어로 ‘바인(bánh)’은 빵이나 케이크, 떡과 같이 모든 종류의 가루로 만든 음식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쌀이나 타피오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음식을 말한다. 한편 땟(tét)은 베트남의 설날로 베트남에서 가장 큰 명절을 뜻하며, 문자 그대로 해석하였을 때는 ‘썰다(sliced), 나누다(split)’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때 음식을 감싼 잎은 ‘라 종(lá dong)’이라 하여 베트남에 널리 자생하는 나무인 스타키프리니움 플라켄타리움(Stachyphrynium placentarium)에서 얻은 잎을 사용하는데, 이것의 대체제로는 흔히 바나나잎이 쓰인다. 바인 쯩과 바인 땟 바인 땟은 찹쌀 반죽에 콩과 고기를 넣어 잎으로 말아 쪄낸다는 측면에서 베트남의 신년 요리인 바인 쯩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띤다. 그러나 바인 쯩이 땅을 형상화하여 사각 모양을 띠는 것에 비해, 바인 땟은 달을 형상화하여 원형을 띤다. 또한 바인 쯩이 북부지역에서 인기가 있는 것에 비해, 바인 땟은 남부 지역에서 인기 있는 요리이며, 바인 쯩이

프로뱅 지역의 중세도시 상가지역

프로뱅 지역의 중세도시 상가지역

11~13세기 사이에 발달했던 중세 무역도시이자 요새 도시로 모직물 산업으로 유명했다. 중세에 만들어진 거주지 건물, 무역 창고, 종교 건축물, 요새 건축물들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드프랑스 지방과 샹파뉴 지방 사이에 위치한 프로뱅(Provins)은 예전에는 샹파뉴 백작(Counts of Champagne)령에 속해있던 요새화된 중세도시였다. 12~13세기 동안 수 많은 상인들이 거래를 위해 머물렀던 곳으로 경제적 활기가 넘쳐났다. 이곳에서 열렸던 샹파뉴지방의 시장은 북유럽과 지중해지방을 연결시켰으며 지방 산업이었던 모직물 산업을 크게 확장 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직물을 팔려는 플랑드르(Flanders) 상인들과 사려는 이탈리아 상인들은 이곳시장에서 만났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11~15세기 동안 지어진 창고, 요새, 교회, 집, 성탑과 같은 중세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2001년프로뱅은 중세 주요 무역도시이자 요새도시로서의 그 가치와 훌륭한 보존 상태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World Heritage)로 선정되었다.11세기 초 샹파뉴 백작은 그 누구보다 빨리 장거리 무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영지 내에 있던 도시들의 지리적 이점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프로뱅은 주요한 교역로들의 교차지점에 위치한 곳이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열린 시장은 항상 성황을 이루었고 12~13세기에 가서는 유럽의 주요 무역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지리적 이점만이프로뱅 지방에 경제적 활기를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샹파뉴 백작들은 영지내의 상인들을 중세에 만연했던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주었고 자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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