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문화생활

만화를 믿었던 사람, 에르제

서울특별시 > 서초구 > 서초동

by 담차 2019-02-11 조회 119 0

인간은 자신의 꿈을 믿음으로써 꿈을 현실로 바꾼다.

“By believing in his dreams, man turns them into reality.”

 

 

<에르제 : 땡땡> : 땡땡 탄생 90주년 대규모 회고전,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봤다.

 


 

 

 

- HERGE : TINTIN

 

 

벨기에의 문화유산급 컨텐츠 ‘땡땡[TINTIN]’에 관한 초기 작품부터 현재까지 오마주되어 다양하게 재생산 되고 있는 모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로,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시작으로 그랑 팔레, 런던의 소머셋 하우스, 덴마크를 거쳐 아시아 최초로 국내에 소개된다. 땡땡을 만나고 싶어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을 찾았다.

 

 

 

-요금, 전시 안내

 

기간 : 2018.12.21. (금) ~ 2019.04.01. (월)

시간 : [12~2월] 11:00 ~ 19:00 (입장마감 오후 6시) /

        [3월] - 오전 11시 - 오후 8시(입장마감 오후 7시)

휴관일 : 2/25(월), 3/25(월)

장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요금 : 성인(만 19 ~ 64세) 15,000원

        청소년(만 13 ~ 18세) 11,000원

        어린이(만 7 ~ 12세) 9,000원

        미취학아동(만 13개월 ~ 만 7세 미만) 6,000원

        특별할인(만 65세 이상) 6,000원

 

-도슨트 안내

 

도슨트 1시, 3시, 5시

어린이 도슨트 매일 오전 11시 30분

오디오 가이드 3,000원

 


 

-에르제의 죽음

 

‘땡땡 탄생 대규모 회고전’ 답게 전시는 에르제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1983년 2월 25일 백혈병을 앓다가 갑작스러운 심박동 정지 상태에 빠진 에르제는 브뤼셀 생뤽병원으로 들어선다. 3월 3일 밤 10시경 의사가 최종 사망 선고를 내렸고 이 소식이 벨기에를 넘어 유럽 전역에까지 전해졌다. 3월 5일 리베라시옹 신문 1면에 실릴 정도로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추모했고, 많은 유럽인들이 에르제의 별세소식에 마음 아파했다.

 

신문에 쓰인 그림은 에르제가 직접 그린 ‘땡땡의 모험’시리즈 중 한 장면으로, 그와 함께 다니는 강아지 말루가 울부짖고 있다. 그 모습이 더욱 서글퍼 보인다.

 

 

 

-에르제는 누구인가

 

(사진 출처 : 에르제 : 땡땡 블로그)

 

본명은 조르주 프로스페 레미[Georges Prosper Remi]로, 본명의 이니셜(G.R)을 거꾸로 읽은 ‘에르제(R.G)’를 필명으로 썼다. 에르제[Herge, 1907 – 1983] 1907년 벨기에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부터 활동적이고 호기심 많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특히 보이스카우트 활동에 매우 열정적으로 참여해서 ‘호기심 많은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만화가로서의 첫 경력도 보이스카우트 잡지인 ‘벨기에 보이스카우트’로 시작했다.

 

 

(사진 출처 : 에르제 : 땡땡 블로그)

 

그가 보이스카우트 시기에 했던 경험은 이후 ‘땡땡’의 캐릭터와 모험이야기로 시작된다. 탐사 기자를 직업으로 하는 ‘땡땡’ 캐릭터를 탄생시켰고, ‘땡땡의 모험’ 시리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후 땡땡의 활동범위를 전 세계에서 달나라까지 넓히면서 ‘땡땡의 모험’은 50개 언어로 번역, 60여개 나라에 32억 부 이상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땡땡의 모험’시리즈 표지

 

 

상을 떠날 때까지 만화 '땡땡의 모험' 시리즈를 쓰고 그리는데 평생을 바쳤으며, 초기 유럽 만화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유럽 만화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앤디워홀이 그린 에르제

 

 

 

-광고 예술가 에르제

 

 

에르제가 처음부터 땡땡의 모험에 집중한 건 아니었다. 1930년대에는 아뜰리에 에르제-광고가 출범했다. 인문학에서 견고한 토대를 얻은 독학 예술가의 면모를 보인 분야였다.

 

 

 

그는 항상 광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포스터의 본질을 완벽하게 포착 할 수 있었다. 그는 광고 분야가 오랫동안 자신이 평생을 바칠 예술이라고 믿었다.

 

초기의 조르주는 땡땡의 모험보다 일러스트레이션과 광고에 더 중점을 두었다. 그는 레오 마르퍼트를 비롯한 당대의 그래픽 아티스트들을 매우 존경했다

 

-1986년 게르마인 레미 키켄즈

 

 

 

-예술 애호가 에르제  

 

 

1960년대 초, 50대의 에르제는 유명한 화가 루이스 반 린트에게 그림을 배웠다. 당시에 에르제가 그린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예술적 재능을 보여준다. ‘클리어 라인’ 기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르제가 그린 작품들은 만화와 달리 매우 회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는 내가 가진 유일한 표현 수단이다. 내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회화? 회화를 하려면 삶을 전부 바쳐야 한다. 그리고 이번 생은 단 한 번뿐이므로(그것도 이미 많이 지나버린),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림이냐, 아니면 땡땡이냐. 둘 다 할 수는 없다! 그저 주말에만 그림을 끄적이는 화가가 될 수는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회화에 재능을 보였지만, 그는 결국 땡땡을 선택한다. 삶을 전부 바쳐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만화를 그리는 것 자체에 큰 열정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결국엔, 땡땡

 

(사진 출처 : 인터파크)

 

에르제가 사랑한 캐릭터. '틴틴', '탱탱', '땅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유럽의 대표적인 캐릭터다. 호기심 많고 모험심 강한 소년 기자 땡땡이 그의 애견 밀루(Milou)와 함께 세계를 다니며 모험을 한다는 내용이다. 에르제는 실제로 어느 한 인터뷰에서 "신체적으로 땡땡은 14세에서 17세 정도, 정신적으로는 14세"라고 말한 바 있다.

 

 

 

 

에르제는 앞서 언급한 하나의 깨끗한 검은 윤곽선을 체계적으로 사용해 그림자나 명암이 들어가지 않게 그리는 방식인 클리어라인 기법을 사용한다. 명암이 없어도 인물과 공간감이 뚜렷하게 보인다. 간결한 그림체를 보는 순간 에르제의 그림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푸른 연꽃, 1936

 

 

 

-달나라로 간 땡땡

 

 

 

2019년은 땡땡 탄생 90주년 및 인류 최초 달 착륙 50주년이 되는 기념적인 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생각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미국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딛기 15년 전인 1954년에 에르제는 이미 만화 속에서 땡땡을 달에 보냄으로써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보이기도 했다.

 

 

 

만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달나라로 간 땡땡 시리즈.

전시 입구엔 우주선 모형도 직접 볼 수 있다.

 

 

 

-만화를 믿었던 예술가 에르제

 

(사진 출처 : 에르제 : 땡땡 블로그)

 

땡땡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나는 항상 최선을 다했고, 작업은 항상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즐거웠다.”

1975년 12월 30일, 라 리브로 별지크 지에 실린 에르제의 말 중

 

그가 어떤 작업보다 땡땡을 그리는 일을 사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평생을 만화를 그리는 일에 몰두했던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사진 출처 : 에르제 : 땡땡 블로그)

 

만화를 그리는 일을 넘어 만화 자체가 대중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랐던 에르제는 이렇게 말했다.

 

“2000년대엔 만화 위상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그때는 부디 '아이들이나 보는 고상하지 못한 책'이라는 딱지가 벗겨져 있길 바랍니다. 만화를 향해 눈을 흘기는 편견, 공격이 부디 사라지길 바랍니다. 2000년대엔 만화가 문학이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온전한 표현 수단으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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