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085만명의 하얼빈(哈尔滨)시는 흑룡강성 수도(省會)이다. 인천에서 2시간 10분이면 도달할 수 있고, 아시아나항공, 중국남방항공, 제주항공, 중국국제항공 등이 직항기를 운행하고 있다. 흑룡강(黑龙江)은 러시아와 국경을 가르는 강으로, 러시아에서는 아무르강(Amur), 몽골인과 퉁구스인은 하라무렌(검은 강)이라 부른다. 흑룡강성의 명칭은 바로 흑룡강에서 온 것이다. 흑룡강은 강물이 검다고(黑水)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흑색을 띤 부식토가 연안에서 침식되어 강물과 섞이면서 검은 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얼빈공정대학. 2011 Ⓒ 김동하.
하얼빈공정대는 1953년에 개교한 인민해방군군사공정학원이 전신이다. 주로 선박공정관련 전공을 두고 인재를 배양하였으며, 1994년에 종합대학인 하얼빈공정대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사진의 동상은 대학을 개교한 천겅(陈赓. 1903-1961) 장군이다.
당나라 때에 흑수도독부(黑水都督府)를 설치하였으며, 7세기경 발해가 국가를 건립하였다. 이후 요(遼)나라를 거쳐 금(金)이 건립되었다. 원나라 시대에는 요양행성(遼陽行省)에 속했으며, 명나라 시대에는 요동지휘사사(遼東指揮使司)에 속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흑룡강성 이북지역이 러시아에 의해 점령되었고, 1932년에는 일본이 점령하여 7개성으로 분할된 바도 있다. 1945년 국민당정부는 흑룡강성과 송강성(松江省)으로 분리하였으나, 신중국 성립후인 1954년에 흑룡강성으로 통합했다.
2011년도 하얼빈 주요 도심 모습. 2011 Ⓒ 김동하.
흑룡강성은 중국 동북부 최북단에 위치한다. 북동쪽은 우수리 강을 경계로 러시아와 3,045㎞ 접경하며 25개 대외통상구가 있다. 서쪽은 내몽고자치구, 남쪽은 길림성과 인접하고 있다. 러시아와 접경하고 내륙에 위치하면서도 개방적이며 국경중심으로 국경무역 활발하다. 흑룡강성의 약칭은 흑(黑)으로 표기하고 있다.
하얼빈국제공항. 2014 Ⓒ 서창배.
흑룡강성 수도인 하얼빈은 한국인에게 역사적 의미를 갖는 곳이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 하얼빈 기차역이다. 중국은 2014년 1월, 하얼빈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세웠다. 하얼빈은 중국인에게도 역사적 상처가 어린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하얼빈에서 731부대를 만들고 생화학전에 대비해 전쟁 포로 등을 상대로 바이러스, 독가스 등에 관한 잔혹한 인체 실험을 했다.
하얼빈 안중근의사 기념관. 2014 Ⓒ 서창배.
원래 안중근의사 기념관은 실제 거사 장소인 하얼빈 기차역에 있었으나, 역 보수공사로 인해 2017년 3월에 기차역 인근인 안성가(安升街)로 이전하여 재개관하였다. 하얼빈역사에는 아직도 저격 장소에 표지석이 남아 있다.
하얼빈 기차역. 2014 Ⓒ 서창배.
하얼빈의 어원은 만주어로 ‘그물을 말리는 곳’, 몽골어로 ‘평지’, 러시아어로 ‘커다란 공동묘지’, 여진어로 ‘명예’, 퉁구스어로 나루터, 하얼빈 원시어로는 백조라는 뜻으로 매우 다양하다. 하얼빈은 ‘동방의 모스크바’로 불리기도 한다. 러시아 정교회인 성소피아 성당을 비롯해 하얼빈에는 유난히 러시아 풍 건물이 많기 때문이다.
러시아풍 건물이 들어선 하얼빈 도심 풍경. 2014 Ⓒ 서창배
20세기초 하얼빈이 현대도시로 부상한 것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컸다. 하얼빈은 러시아가 만주를 지배하기 위한 거점도시였다. 1896년 중·러 밀약으로 러시아가 중동철도(中东铁路) 부설권을 획득해 1903년 만주를 가로 지르는 총 2430km 길이의 중동철도를 부설했다. 러시아 국경과 연결된 중동철도 완공 후 하얼빈은 러시아인과 중국인들이 모여들며 국제도시로 탈바꿈했다. 20세기 초 하얼빈은 이미 국제적인 상업도시로 번성했다. 당시 미국·독일·프랑스 등 33개국 출신의 16만명의 외국인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 19개국의 영사관이 개설되고 수 백개 공장, 기업, 은행이 세워지며 중심도시로 성장했다.
성소피아 성당. 2011 Ⓒ 김동하.
성 소피아성당(Saint Sophia Cathedral)은 하얼빈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1907년에 축조되었으며, 1986년에 하얼빈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중동철도를 건설하던 러시아 제4보병단이 만든 군 교회당 건물이었다. 1932년에는 다시 중건하여 아시아 최대 동방정교회 건물이 되었다.
러·일 전쟁 당시 만주에서 러시아의 군사작전 기지였던 하얼빈은 전쟁이 끝날 무렵 일시적으로 중국과 일본이 공동 관리했다. 러시아 혁명 뒤에는 러시아에서 도망친 사람들의 피난처가 돼 러시아인 사회가 형성됐다. 러시아 학교가 생기고 러시아어 신문도 발행됐다.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2년 만주국을 설립하면서 일본인 수도 늘어났다. 하얼빈은 러시아와 일본의 야욕이 만나는 제국주의의 교차로였던 셈이다. 이후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된 후 다시 소련군에 의해 점령됐다가 1년 후인 1946년 중국에 반환됐다.
하얼빈 방홍승리기념탑과 광장. 2014 Ⓒ 서창배.
하얼빈 방홍승리기념탑(哈尔滨防洪胜利纪念塔)은 1957년에 일어난 송화강(松花江) 대홍수를 극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58년에 만든 탑이다. 높이 22.5m 이 탑은 하얼빈시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송화강(1927㎞)은 하얼빈시를 관통하는 중국 3대 강인데, 홍수 당시 수위는 해발 120m까지 높아져 하얼빈시를 침수시켰다.
마오쩌둥은 한때 신중국 수도 후보지로 베이징이 아닌 하얼빈을 염두에 뒀을 정도로 하얼빈을 중요시하게 여겼다. 하얼빈이 러시아와 가까워 소련의 지원과 도움을 받기 편리한 지리적 위치라는 판단에서다. 하얼빈은 예로부터 군수공업의 중심지였다. 인근에 중국 최대인 다칭유전과 안산 등 대규모 철광석 산지를 토대로 석유화학·철강·기계·발전설비·자동차·조선업 등 중국의 근대화를 꽃피웠다. 그래서 하얼빈 대부분 기업은 국영기업이다. 그러나 1980년대 중국 개혁개방 이후 혜택이 가장 늦게 도달했고, 이후에도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해 이 지역은 노후 공업기지로 전락했다.
2018년 기준 흑룡강성의 GRDP(지역내 총생산)는 1조 6361억 위안으로 중국 내 31개 지역 중 23위에 머무르고 있다. 1인당 GRDP를 보면 43,274위안(6539달러. 1$=6.6174위안)으로 중국 내 31개 성·자치구·직할시 중 27위로 순위가 더 내려간다. 같은 해 중국의 1인당 GDP가 64,644위안(9,768달러)인 것을 고려하면, 중국 평균치의 67%에 불과하다. 2003년부터 시작된 ‘동북진흥정책’이라는 동북3성 발전을 위한 국책사업 추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유하지 못한 지역에 속해 있다.
하얼빈 맥주문화광장. 2014 Ⓒ 서창배.
산동성 칭다오맥주 못지않게 하얼빈맥주도 유명하다. 1900년에 러시아 상인이 만든 하얼빈맥주는 중국 최초의 브랜드 맥주로 등장했으며, 중국내 5대 메이커로 부상했다. 2004년에는 세계최대 맥주사 안호이저 부시(AB)가 인수하여, 사유화 되었다. 1988년부터 하얼빈맥주 축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흑룡강성은 중국 내 1위의 농업대성(農業大省)이다. 따라서 14억 인구가 먹을 식량을 생산해야하는 막중한 임무가 이곳에 있다. 흑룡강성 경작지 대부분은 유기물이 풍부한 부식토이며, 이는 농업 생산성 제고로 이어진다. 2018년 기준으로 농작물 파종면적은 하남성에 이어서 2위이며, 양곡 파종면적은 1위이다. 실제 2018년 기준 각 지역의 양식(쌀·밀·콩·옥수수·고구마·감자 등) 생산량을 보면, 흑룡강성이 7506만톤으로 1위를, 하남성이 6048만톤으로 2위를, 그리고 산동성이 5319만톤으로 3위를 점유하고 있다. 흑룡강성의 주요 곡물로는 벼, 밀, 옥수수, 콩을 꼽는다.
러시아풍 건물이 들어선 하얼빈 도심 야경. 2014 Ⓒ서창배.
하얼빈시가 얼음의 도시로 불리는 것은 하얼빈 국제빙설제(冰雪节) 때문이다. 이 축제는 하얼빈얼음축제, 하얼빈 눈축제, 하얼빈 빙등제라고도 불리며, 얼음 조각과 눈 조각, 빙등 전시를 비롯한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된다. 최초 명칭은 ‘하얼빈 빙설제’였는데, 2001년에 빙설제와 흑룡강 국제스키 페스티벌과 병합하여 정식이름을 ‘중국 하얼빈 국제빙설제’로 바꾸었다. 하얼빈 국제 빙설제는 중국 역사상 제일 먼저 눈과 얼음을 이용한 조각전시회로 일본 삿뽀로 눈축제, 캐나다 퀘백의 윈터 카니발, 노르웨이 오슬로 스키축제와 함께 세계 4대 겨울축제로 꼽힌다.
하얼빈 국제빙설제 모습과 제35회 하얼빈 국제빙설제 홍보 사이트
자료: 하얼빈 시정부 (2019) www.harbin.gov.cn
하얼빈 지역의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20도로 최저기온은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 이러한 기후조건으로 눈과 얼음이 풍부하고, 이를 활용한 민간예술이 일찍이 발전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빙등(冰灯)이었다. 하얼빈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1963년부터 매년 빙등 전시회를 주최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하얼빈 국제 빙설제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1985년 1월 5일에 제1회 하얼빈빙설제가 개최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년 1월에 개최되며, 폐막식은 따로 없이(눈이 녹을 때까지 작품을 전시), 축제기간동안 춘절, 원소절 등의 전통명절을 함께 보낸다. 빙설제는 송화강 북쪽에 있는 태양도공원(太陽島公園)에서 열린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빙설 조각가들이 매 년 주어지는 축제 테마에 맞는 작품(세계 유명 건축물, 애니메이션 주인공 등)을 만들어 전시한다.
하얼빈 도심을 관통하는 송화강. 2014 Ⓒ 서창배.
이번 여행기에 참고한 문헌에는 ‘중국지리의 이해(김동하. 2016. 제2판)’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