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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안보 관광지에서 마주했던 계절감이 만들어 낸 차이.
헤이리와 임진각 평과공원을 다녀온 뒤, 그곳은 더욱 군사한계선과 안보관광지로 이미지가 굳혀졌다. 점차 상황에 따라 활동반경이 서울, 경기권 주변으로 좁혀지며, 조금 더 주변의 그 아름다움과 계절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와중에 만난 파주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겹겹이 쌓여가던 시간의 중후함과 함께 다가온 계절감은 그곳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으며, 광역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길에 마주한 박물관과 대형 카페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더했고, 그 삭막했던 이미지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안보관광지를 다녀온 뒤, 처음 그 계절감을 만끽했던 곳은 파주에 자리한 조선왕릉 덕분이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서려있던 겨울의 기운과 낮은 담장 너머로 들려오던 그 철새들의 울부짖음.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던 곳에 가만히 앉아 보내는 시간은 그 칼날 같은 겨울바람마저 기분이 좋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지도를 살펴보니, 가을의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들과 함께 고풍스러운 곳들로 가득 채워진, 서울근교 여행지 파주. 그 계절감의 색을 담아 살포시 결과물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1. 운정신도시 황화코스모스
송파구의 반대편. 한창, 올림픽공원 들꽃마루가 황화코스모스로 물들어 갈 때, 정확히 대척점에 자리한 곳에서 코스모스 개화 소식이 들려왔다. 주변을 온통 짙은 주황빛으로 물들였던 녀석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으며, 그 짙은 색들에 고혹미를 느껴버릴 정도였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지하철 하차 후, 도착한 운정역에서 목적지까지 꽤 걸었다.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그토록 엄청난 길이의 육교는 한국에서 처음이었으니, 약 10~15분 정도를 걸어서야 그 자태를 오롯이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올림픽공원의 그곳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많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SNS를 타고 유명세를 치르던 곳들만 주로 사람들이 몰리니, 이런 곳을 발견할수록 갖가지 생각들이 장점과 단점으로 나뉘며, 정리되곤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이라는 표현이 참 많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SNS에 소개된 아름답고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곳들도 좋았지만, 한 곳으로 편중된 주제의 다채로움이 부족하다는 것 또한 너무 잘 보였기 때문이다. 그저 아직은 내 영향력이 그곳까지 닿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들꽃마루의 황화코스모스 밭은 다른 요소들을 정리하면서, 주변이 매우 말끔했었다. 하지만, 꽃밭 사이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들 따라 바람개비들이 조화로움을 더한 채, 시선에 즐거움을 선사했다.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을 거닐던 사람들이, 벌들만 조심한다면, 맘껏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렌즈를 줄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사진을 담다 보니, 자연스레 주변의 사진 요청을 받게 된다. 그 요청을 들어주고 나면, 돌아오는 그 만족스러운 반응들은 내게 또 다른 보람을 건네주곤 한다.
한 때, 당시 서울과 그 주변은 온통 황화코스모스로 뒤덮여, 좀 더 다채로운 녀석들이 그리워지곤 했다. 장미로 얘기하자면, 온통 붉게 물든 꽃들이 주변을 장식했따는 소리가 되는데, 역시 어느정도의 다양성은 중요해 보였다. 이번 봄, 서울 한강을 물들였던 유채꽃의 향연처럼 다가오는 여릉메 파주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작년, 서울 어느 유명 사찰에서 마주했던 꽃무릇과 더불어 녹음 짙은 그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줄지와 더불어 다양한 생각과 함께 순간을 정리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어느 할머님과의 담소였는데, 여행을 왔냐는 질문과 함께, 운정신도시, 파주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다. 생각보다 여행지에 대해 조예가 있으셔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니, 버스를 탈 수 밖에 없었다. 단풍의 아르마움을 볼 수 있다는 서원과 조선왕릉에 대한 이야기. 그 주변의 규모도 상당했기에, 지금껏 서울과 다른 곳들에서 만났던 단풍들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를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 엄청났던 규모와 함께 파주에 대한 궁금증은 깊어져만 간다.
2. 프로방스 마을
나는 퓨전보다는 기본적으로 오리지널을 좋아한다. 무언가를 본떠 따라한 것들은 직접 그곳을 다녀오지 않는 이상, 흥미를 잃기 마련인데, 강원도에 자리한 산토리니가 바로 그러했다. 이곳도 처음에 발견하고 별 다른 관심이 가징 않았으나, 그 의아함은 곧 확신으로 바뀌며, 부모님과 함께 오고 싶은 곳이 됐다. 끝까지 즐기진 못했지만, 일몰 이후의 모습을 담은 그곳의 모습은 오직 그곳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파주에 담은 남부 프랑스 마을, 프로방스 마을에 대한 이야기다.
파란색과 정말 잘 어울리는 마을이었다. 마을 초입부에 자리한 리틀 에펠탑과 은은하게 퍼지던 커피 향과 빵 굽는 냄새.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닥 프랑스의 그 분위기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한쪽에는 소소함이 가득한 마을의 형태와 더불어 흘러가는 시간 속,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곳들까지 세심히 신경을 쓴 모양새였다. 그곳에 겨울의 그 알싸한 분위기가 더해지니, 그 오묘한 분위기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난 이미 프로방스 마을의 분위기에 스며들었다.
국내 여행객들에게, 특히 사진가 분들에게, 겨울은 출사 비수기로 통한다. 제주도 또는 바다와 맞닿은 몇몇 지역이 아니고선, 눈이 내리는 순간도 정해져 있고, 길거리에는 오직 앙상한 나뭇가지가 전부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분들에게 이곳은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였다. 이후, 일몰의 순간, 마을 옥상에서 만난 그 황홀경의 순간은 마을의 아기자기한 건물들과도 상당히 잘 어울렸으며, 그냥 서울로 가기 싫어지니, 근처의 카페를 찾아 잠시 시간을 보내본다.
이후, 따사로운 곳에서 마주한 프로방스의 마을의 모습은 낭만 그 자체였다. 커피 한 모금으로 몸을 녹이니, 카메라에 담은 순간들을 정리하며, 부모님과의 통화를 이어간다. 파주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오고 싶은 곳을 찾았다고, 다음에 꼭 함께 하자라는 말도 같이 남기며 말이다. 그렇게 겨울의 색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녹여낸 파주에서의 시간은 지금껏 내 기억과 사진으로 저장공간에 오롯이 남아 있다. 다가오는 하반기에는 그 소소한 약속을 이행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부지런해져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