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 여행기 작성
새 여행기 작성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를 여행한 적이 있다. 3,700m의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에서 하루 머문 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에 오를 때였다. 트래킹 중에 만난 한 여행자가 고산증을 호소했다. 결국 그녀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코 앞에 두고 포기하고 돌아갔다. '별것 아닌' 고산증 때문에 포기하는 그녀가 한없이 약해보였다. 타슈쿠르간에서 고산증에 시달리자 불현듯 그때가 떠올랐다. 당시 그녀는 무척 힘들고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녀를 한심하게 생각했다니, 나란 인간은 참 오만했다.
타슈쿠르간의 두번째 날도 고열과 구토는 계속됐다. 눈을 감으면 땅 속 깊숙히 빨려들어가는 듯했다. 고산증이 이토록 무서운 증상인지 비로소 알게 됐다. 악몽을 꿨다. 내가 죽었고 가족, 친구들이 모두 울고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얘기했다. "그래도 여행하다 죽었으니 행복했을거야"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다. 온몸이 식은 땀으로 가득했다.
나는 지금 욕심을 부리는 것일까.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여기에 다시 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여행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이 또한 나의 욕심이겠지만, 이대로 돌아간다면 평생 후회로 남을 듯 했다.
아침 7시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파키스탄 국경도시 소스트 행 버스는 하루에 한편, 아침 9시부터 표를 살 수 있다. 예매가 안되다보니 불안한 마음에 일찍 서둘렀다. 더욱이 오늘은 금요일이다. 주말에는 파키스탄, 중국 국경이 폐쇄되기 때문에 오늘 못가면 이틀 더 타슈쿠르간에 머물러야 한다.
버스터미널에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중국과 파키스탄을 오가는 상인인 듯 커다란 보따리를 하나씩 짊어지고 있었다.
8월 한여름이 무색하게도 아침 바람이 매섭다. 패딩을 뚫고 들어오는 한기에 잔뜩 몸이 웅크러졌다. 안내와 달리 티켓 창구는 9시 반이 넘어서야 열렸다. 한 파키스탄 사람이 항의하자 매표소 직원은 대수롭지 않게 안내 문구를 9시에서 9시반으로 고쳤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됐죠?"
소스트까지는 225위엔(4만원)이다. 국경버스 요금 치고는 꽤 저렴하다. 표를 구입(현금결재만 가능)하고 버스에 올라탔는데 더 컨디션이 안좋아진듯하다. 아침에 2시간이나 추위에 떨어서 몸살까지 더해진 모양이다. 버스기사가 나를 보더니 이 상태로는 무리라며 월요일에 가라고 말했다. 왠일인지 그 말을 들으니 오기가 생겼다. "문제 없어요, 오늘 갈 수 있어요"
타슈쿠르간에서 소스트행 버스 터미널
타슈쿠르간 출입국 사무소에서 출국 도장을 찍고 짐 검사를 한 뒤 출발했다. 본격적인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시작이다.
창밖 풍경은 가히 예술이다. 세상에서 볼 수 없는 풍경화 속을 달리는 느낌이다. 아무리 실력있는 화가도 아마 이러한 풍경화는 완성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자연만이 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옛날 이 길은 좁고 험했다. 하지만 실크로드 상인, 고승들은 이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지금 나는 시원한 아스팔트를 달리고 있지만 주변 풍경은 여전히 아찔할 정도로 위험천만하다. 그 옛날 이 길은 얼마나 더 위험하고 외로웠을까. 실크로드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상인들과 구도승들이야말로 진정한 모험가, 여행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의 의지와 용기 덕분에 문명은 발전하고 창조됐다.
검문소를 통과할 때 외에는 소스트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에서 내릴 수 없다. 당연히 휴게소도 없다.
한 파키스탄인이 내리려고 하자 제지를 당했다. 그는 씩씩대며 도대체 이유가 뭐냐며 공안에게 따져 물었다.
공안은 이렇게 말했다.
"이유같은 건 없어"
파키스탄인은 체념한 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공안의 말은 내내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 아파도 무조건 참자. 이유는 없어'
버스는 2시간여 만에 쿤자랍패스(4,693m)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 검문소다. 짐과 여권을 검사했다. 쿤자랍 패스 주변에는 설산 고봉들이 둘러싸고 있다. 설산 풍경은 너무나 선명해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난 지금 누군가의 꿈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꿈의 주인공이 잠에서 깨지 않는 이상 나는 이 곳을 계속 헤매지 않을까.
카라코람 하이웨이 중국 국경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휴대폰 사진이나 노트북까지 뒤지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쿤자랍 패스 국경은 평범했다. 가방을 열어 짐을 확인했지만 까다롭진 않았다. 직원들은 내가 고산증에 힘들어하자 오히려 고산증 약까지 챙겨줄 정도로 친절했다. 역시 여행은 직접 부딪혀봐야 하나보다.
쿤자랍패스
중국구간은 대체로 도로상태가 좋다
이제부터는 파키스탄 땅이다. 하지만 중국 도로와는 확연히 다르게 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움푹 패인 곳이 많고 안전 장치가 없는 구간도 여럿 있다. 그럼에도 풍경은 여전히 황홀할 정도로 멋지다. 다만 계곡 사이로 보이는 잿빛의 '훈자워터' 풍경이 중국에서 떠나왔음을 확인시켜준다. 훈자워터는 빙하에서 녹은 물로 훈자가 세계적인 장수 마을이 된 비결이다.
굽이굽이 계곡을 달리다가 버스는 쿤자랍 공원에 정차했다. 파키스탄 경찰이 올라와 승객들의 국적을 체크하더니 "Korean"을 외친다. 사무실에 따라가니 통행료 20달러를 내라고 했다. 외국인은 무조건 20달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중국 승객들은 내리지 않는가.
"중국인은 외국인 아니에요?"
그러자 직원이 이렇게 말한다.
"중국과 파키스탄은 친구야"
아마도 중국이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깔아줬기 때문일 것이다.
쿤자랍 공원을 지나가는 것 뿐인데 입장료를 내야 하고, 그것도 받고 싶은 사람한테만 받는다니. 대동강 물을 팔았던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쿤자랍 공원 입장료를 받는 사무실
버스는 오후 4시가 되서야 소스트에 도착했다. 작은 출입국 사무소에서 입국 도장을 받고나서야 파키스탄에 온 실감이 났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소스트에서 머물지 않고 바로 훈자나 이슬라마바드로 향한다. 출입국 사무소 주변에는 훈자, 이슬라마바드 행 봉고차가 대기중이다. 훈자는 여기서 2시간만 더 가면 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몸이 안좋아 소스트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소스트는 작은 마을이라 100~200m 범위안에 호텔, 식당들이 몰려있다. 출입국 사무소 바로 앞 마을에서 가장 처음 보이는 호텔로 향했다. 호텔 직원은 1박에 25달러를 부른다. 좀 비싼듯 했지만 그냥 묵기로 했다. 나중에 호텔 예약사이트에서 보니 14달러짜리 방이었다. 파키스탄에 온 첫날부터 호구가 되는구나.
소스트출입국사무소
소스트풍경
바가지요금으로 묵은 소스트 호텔
파키스탄에서의 첫 아침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