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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꼭 가야하는 곳을 꼽으라면?
서면과 전포 카페거리에서 만나는 트렌드의 물결
여행을 가면 늘 가는 곳이 있다. 바로 현지의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번화가다.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유명한 관광지, 수려한 자연 경관도 좋아하지만 현지 사람들이 진짜 좋아하는 것에 대해 늘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을 여행하면서 자주 들렀던 곳들을 정리해 보니 서면, 전포동, 해운대, 광안리 해변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에서 추천하는 번화가들을 빠짐없이 둘러봐야 속이 편안한 계획적인 성격은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게 했다.
작년과 올해,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부산을 찾은 덕분에 부산의 트렌드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놀랐던 점은 그동안 구도심으로만 생각했던 서면과 전포동이 예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특히 전포동은 카페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시간을 보내기 그만이었다.
그저 오랜 번화가로만 여겼던 곳에 언제 그랬냐는 듯 젊은 층들을 이끄는 상점들로 그득했다. 이는 생각해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도시의 오래된 거리에는 독특한 지역색과 저렴한 월세라는 장점이 있고, 그 덕에 젊은 사장들이 모여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니 자연스레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톡톡 튀는 감성, 디자인, 분위기가 골목마다 진을 치고 있었다. 발길을 돌릴 때마다 보물을 찾은 듯한 기분은 자꾸 우리의 발걸음을 나아가게 했다. 멋모르고 이곳에서 한 두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안일한 착각이었다. 결국 하루 종일 전포 카페거리와 서면에서 시간을 보냈다. 숙소에 돌아오니 그제야 다리와 발이 아프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였지만, 거리를 누비고 다닐 때에는 그런 아픔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신선하고 흥미로운 부산의 젊은 트렌드를 마음껏 씹고 뜯고 맛볼 수 있어 행복했다.
세계가 인정한 젊은이들의 거리
전포 카페거리
전포 성당 주변에 카페, 소품가게, 맛집이 몰려 있는 골목이 있다. 이곳이 바로 '전포 카페거리'다. 부산의 흔한 거리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 거리를 찾은 이유는 이곳이 2017년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세계 여행지 52곳' 중 하나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선정되어 더욱 의미 있는 거리기에, 안 가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 거리에 무엇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그 궁금증은 바로 해소되었다. 공구, 철물 등과 같이 산업용품 및 자재를 파는 가게들이 늘어선 사이로 감각적인 가게, 카페들이 숨어 있었다. 원래 이곳은 일제강점기부터 공업 단지로 만들어졌으며,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전파사와 공구상점들이 밀집한 거리로 유명했다고 한다.
2010년부터 조금씩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카페거리가 함께 공존하게 되었고, 이제는 카페거리로 더 유명해졌다.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카페마다 다른 커피와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 거리의 매력이다. 일반적인 커피 메뉴를 파는 곳도 많았지만, 요즘 젊은 층이 사랑해 마지않는 에스프레소 바도 곳곳에 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카페거리에서 우리의 발길을 이끈 것은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당인 '다이너'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두코비 다이너'였다. 원래는 이곳에서 부산 대표 피자로 알려진 이재모 피자를 먹으려 했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웨이팅에 그대로 마음을 접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곳의 독특한 분위기를 보며 피자집에 줄이 긴 게 오히려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다이너 그 자체를 구현한 공간도 있지만, 아예 미국 체육관을 통째로 가져온 듯한 공간도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칠해진 체육관과 라커룸의 모습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알고 보니 이곳은 현재 전포 카페거리에서 독특한 분위기로 인기가 높은 곳이었다. 사람이 없었던 것은 우리가 붐비는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왔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공간에는 미국의 문화, 분위기와 맛을 즐기러 오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카페거리지만 이곳에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빼앗은 것은 거리마다 있던 소품 가게들이었다. 매장마다 각기 다른 개성으로 꾸며져 있어서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어떤 가게에는 일본 캐릭터들의 굿즈들이 한 가득있었고, 또 어떤 가게에서는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소품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반려동물을 콘셉트로 반려 동물 관련 용품과 더불어 이를 활용한 소품들을 팔고 있는 가게도 있었다.
각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기에 누가 최고라고 말하긴 어려웠지만, 그중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게가 있었다. 바로 엽서들만 모아놓은 엽서 도서관, '포셋(Poset)'이라는 공간이었다. 서울 연희동에도 있지만, 부산의 포셋은 전포동의 옛 골목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었다. 공간의 분위기와 더불어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담긴 엽서들을 한 공간에 만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부산 대표 번화가
서면
전포 카페거리에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소품 가게에서 쇼핑을 즐기고, 잠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가 배고파지면 식사도 하고... 이런 저런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별 것 안한 것 같은데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다니, 놀랄 노자였다. 그러나 부산 거리에서의 즐거움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오히려 더 커지고 있었다.
카페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면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어둠 속에서 화려하게 네온 사인을 밝히고 있는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눈이 아플 정도로 쨍한 핑크빛이 가득한 인형 뽑기 가게,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은 밈(meme)을 간판으로 사용한 가게, 부산의 옛 모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가게 등... 각자 개성이 뚜렷한 가게들이 앞다투어 손님들을 맞이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런 가게들 사이마다 힙한 패션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며, 여기가 예전에 내가 알던 곳이 맞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펼쳐 이곳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거리의 이름이 '만취길'이라는 것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름이 아닌가. 이름의 어원은 이자카야를 비롯한 다양한 술집들이 모여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명은 아니지만, 젊은 층 사이에서 통용된다고 해서 흥미로웠다. 이를 통해 부산 사람들의 탁월한 유머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부산 서면의 새로운 변화는 앞으로 더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부산진구청이 예산을 대대적으로 투입해 테마 거리를 조성하는 '부산진구 서면권 세대별 테마 거리 조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계적으로 시작되어 2026년 마무리될 이 사업은 세대에 따라 거리를 구분해 특화하는 계획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도심을 정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와 더불어 전 세대가 서면으로 찾아오길 바라는 부산진구청의 의도가 녹아있다. 거리가 깨끗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더 많은 볼거리, 즐길 거리, 먹거리가 생긴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척 설렜다. 앞으로 더, 부산을 찾을 이유가 생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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