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노형수퍼마켙을 찾았다. 이번으로 3번 째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면 한 번씩 이곳을 찾게 되는 듯하다. 친구가 제주를 놀러와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는데, 이상하리만치 친구가 제주도로 놀러 온 내내 비가 왔다. 비가 내리면 제주를 여행할 때 선택지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번도 마찬가지.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 마침 노형수퍼마켙을 가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긍정적 사인을 보냈다.
이곳을 여행하려면 알아야 할 세계관 <THE FORGOTTNEN DOORS>
노형수퍼마켙
아주 오래전, 두 개의 지구를 잇는 '문'이 있었다. 이 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첫 번째 지구와 신화, 설화, 상상 속 이야기가 펼쳐지는 두 번째 지구를 연결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문의 존재를 잊기 시작했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두 개의 평행 지구를 다시 연결하는 방법은 바로 잊혀진 문, The forgotten doors를 찾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 숨겨진 문을 발견하는 순간 두 지구는 연결되고,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잃어버린 문, The forgotten doors. 이 잃어버린 문은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기도, 가끔은 불안정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1981년 어느 날, 노형수퍼마켙에 이 불안정한 문이 열려 제주의 모든 색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문의 힘이 점점 커지면서 수퍼마켙 조차 색을 잃어버렸지만, 수퍼마켙 중심엔 빨아들인 색깔들로 인해 세상에선 볼 수 없는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흑백으로 물든 노형수퍼마켙
2023년 유튜브 트렌드는 페이크 다큐가 아닐까 싶다. 노형수퍼마켙은 요즘 트렌드와 닮았다. 가상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그 디자인을 실사화하여 스토리를 부여했다. 포가튼 도어라는 하나의 심벌을 만들고 빛을 잃은 세상을 구현했다. 그 시작점은 이곳 노형수퍼마켙으로부터 구현된다. 색이 빠진 채 흑백으로 남은 공간. 그 공간을 이어주는 포가튼 도어 뒤로는 색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다양한 색채와 장치로 표현한다.
베롱베롱과 뭉테구름
빛을 모두 빨아들인 '베롱베롱'은 미지의 공간이 시작됨을 알리듯 반짝인다. 얼핏 보면 비가 내리는 모습처럼 보이는 베롱베롱. 다양한 색이 순차적으로 변하며 아른거린다. 여기서 베롱베롱은 제주 방언으로 아롱아롱이란 뜻을 의미한다. 이름처럼 공간은 아련하게 빛난다. 베롱베롱을 지나면 뭉테구름이라는 스폿을 만나게 된다. 사실 이 뭉테구름은 장소가 얼마 전 바뀐 듯하다. 홈페이지에 나온 모습은 솜사탕 같은 구름 위로 색이 펼쳐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커다란 미러볼 위로 빠른 속도로 색이 변하는 형태를 취한다. 미지의 공간이 마치 경고 하듯 빠르게 변하는 모습은 곧 메인 스테이지가 나올 것을 암시하는 듯 했다.
와랑와랑하다
와랑와랑은 제주 방언으로 표준어는 우럭우럭하다를 의미한다. 우럭우럭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필자는 다시 한번 우럭우럭이 어떤 뜻을 지니고 있는지 검색하게 됐다. 사전적 의미로는 불기운이 점점 세차게 일어나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했다. 이글이글하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의 와랑와랑. 이곳은 노형수퍼마켙이 만들어낸 세계관의 메인 스테이지로 모든 빛이 빨려 들어간 중심으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마치 우주의 형상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 와랑와랑은 미디어 아트로 방대한 무대를 꽉 채운다.
와랑와랑에서 머물다
제주는 어느 순간 미디어 아트의 중심지가 됐다. 대표적 미디어 아트로는 성산의 '빛의 벙커'와 애월의 '아르떼 뮤지엄'이 있겠다. 그리고 여기 노형수퍼마켙이 그 뒤를 잇는다. 최근엔 아이바가든 부터 시작해 루나폴까지 다양한 미디어 아트 여행지가 생기고 있다. 각 여행지마다 즐기는 컨셉이 조금씩 다른데, 빛의 벙커는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고, 아르떼 뮤지엄은 체험을 하는 느낌이라면 여기 노형수퍼마켙은 그 중간 포지션을 유지한다. 적당히 즐기면서 적당히 감상하게 된다. 특히 이곳 와랑와랑은 미디어 아트 전시를 통해 긴 호흡을 가지고 간다. 폭포가 떨어지기도 하고, 공간 전체가 수족관이 되기도 한다. 그러며 건물이 불타고, 그곳에 다시 빛이 들어오며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다. 다양하고도 취향에 맞는 미디어 아트를 골라 감상할 수 있는 이곳. 3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하는 것이 키포인트다. 최소 층고가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이 공간이 미디어 아트로 꽉 채워지는 것은 이곳 노형수퍼마켙이 유일할 것 같다.
시즌 3를 기대하며
메인 스테이지인 와랑와랑이 끝나면, 곱을락이라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곱을락이라는 공간은 필자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 와랑와랑을 감상한 뒤, 지나가는 통로기에 더 그런 듯하다. 1981년의 컨셉을 유지하기 위한 모습처럼 보이나 여행자들의 입맛에 맞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이번 노형수퍼마켙은 시즌 2로 곧 마무리가 된다. 시즌 2 이후에는 시즌 3의 노형수퍼마켙을 만날 수 있는데, 시즌 3의 노형수퍼마켙은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고 한다. 바뀌는 세월에 맞춰 발 빠르게 변화를 주는 이곳 노형수퍼마켙. 다음 시즌은 어떤 모습으로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기대가 된다. 또한, 필자에게도 아쉬웠던 부분이 분명 바뀌고 채워질 거라 그 모습을 기대해 본다. 다음 시즌 3에 다시 한번 이곳을 찾아보고 두피디아에 리뷰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