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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익숙했던 곳에서의 순간 그리고 날씨와 관점의 차이에 대해
시각장애인과 코끼리 일화를 들어봤을 것이다. 이후, 그들에게 코끼리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면, 각자 만진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다는 이야기. 어쩌면, 지난날의 부산 또는 다른 곳에서의 여행이 그랬는지 모르겠다. 전체를 보기 전, 불특정 다수의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었고, 그게 정말 심할 땐, 가고싶어했던 여행지가 출발 직전에 누락시킨 적도 더러 있었으니 말이다. 이후, 누군가와 함께 보다는 나 혼자 여행을 다니는 시간이 많아지며, 그 생각에 차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부산이 여행지로 결정, 다른 부수적인 조건들을 뒤로한 채, 나는 무조건 숙소를 해운대 쪽으로 잡곤 한다. 그동안 습관처럼 그려왔던 부산 바닷가에 대한 생각 그리고 이곳에 깃든 나만의 추억이 너무 좋았기에. 하지만, 이번 부산 여행에서는 지금껏 몰랐던 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상당히 놀라웠으며, 감미로웠고, 후회스러웠다. 왜 이곳을 이제야 와봤지? 늘 내 의견이 강하다라고 생각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원치 않는 배려에 내 욕구는 늘 뒷전이었던 시간들. 이번 부산 여행에서는 참으로 많은 것들에 대한 마침표가 내려졌던 시간들이라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다.
1. 오륙도 해맞이공원
이곳은 몇 년 전부터 부산 지역의 수선화 명소로 떠오르던 곳이다. 초행길이던 나조차 SNS에 끊임없이 올라오던 사진들 덕분에 아주 익숙했고, 지하철역에서부터 이곳까지 다니는 버스도 매우 많아 오는 길이 어렵진 않았다. 오륙도 해맞이공원을 찾은 건 수선화 철이 한참 지난 뒤. 그 이유는 수평선을 등진 채, 공원 언덕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으며, 사뭇 셔틀버스를 탄 채, 제주공항에서 서귀포로 향하는 셔틀버스 안에서 바라봤던 풍경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오래 전, 제주도를 여행할 때, 그 풍경을 생각하곤, 그 풍경을 오롯이 기록하고자 지도를 한참이나 뒤졌던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모습이 떠오르며, 부산에서도 이런 풍경을 만나볼 수 있었다니 라는 생각 하나. 이후,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라는 두 번째 생각에 가슴 깊은곳에서 부터 차오르는 성취감이 발걸음을 더욱 경쾌하게 만들어줬다. 초입에 자리한 스카이워크 그리고 카페까지, 이미 이곳은 부산 시민분들에게는 데이트 또는 여행 명소로 각광받고 있는 모양새 그 자체였다.
오륙도는 각각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으로 나누어진다. 등대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인도이며,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 '산천조'에 의하면,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된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형성과정을 살펴보자면, 12만 년(?) 전의 기록까지 올라가야 하니,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게 새삼 괜찮을 것으로 사료된다. 수선화가 없다 해도 충분히 그 풍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공원 자체의 규모는 꽤나 작았지만, 언덕 너머로 자리한 이기대의 존재와 해파랑길의 시작점. 이 두 개의 키워드는 여행 페이지를 운영하며, 정말 많이 들어왔던 키워드다. 특히 해파랑길은 우리나라 동해안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길로, 정확한 시작점과 용어의 의미가 매우 궁금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한 번 더 찾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기대도 마찬가지. 태종대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존재가 매우 궁금했는데, 지도로 보이는 규모와 해안길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에, 다시 한번 부산으로의 여행을 결심하게 만든다.
익숙한 곳에 작게나마 던져진 돌조각 하나. 한참을 익숙해져, 나도 모르는 사이 '부산은 이렇다'에 대한 답변을 유보하게 만드는 시간. 부산의 유명 관광지와 지인들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며, 충분히 다녀봤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이런 곳들을 보면 어떤 한 도시에 대한 무언가를 발견하려면, 최소 몇 년은 살아봐야 되지 않을까? 때문에 여행자는 항상 잠시 머물렀다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몸소 실감케 되는 순간이었다.
2. 흰여울 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과 마찬가지로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여행지다. 이후, 이곳을 오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항상 같이 왔던 사람들과의 관점의 차이를 좁히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혹자는 그럴 때, 잠깐 흩어진 뒤, 약속 장소에서 만나면 되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행의 순간만큼은 항상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 선택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때문에 상당히 시간이 걸렸고 오늘에서야 드디어 이곳에 올 수 있었다.
다른 숱한 영화들도 이곳에서 촬영이 있었지만, 영화 '변호인'을 보고 꼭 한 번 흰여울문화마을에 찾아보고 싶었다. 게다가 이곳을 찾았을 땐, 노을이 부산 전체를 물들이던 와중이었으니, 찬란하게 빛이 나던 바다와 아름답게 물들어가던 노을이 맞아떨어져, 하루에 단 한 번뿐인 극적인 순간을 연출하고 있었다. 배려도 좋지만 조금 더 내 생각에 귀를 기울여도 되는 걸까? 전국 구석구석을 다년간 누비다 보니, 어느덧 이런 순간들이 참으로 소중해진다.
산책로 따라 부산 도심과 맞닿은 곳도 참 괜찮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순간은 흰여울문화마을의 골목 그리고 부산 앞바다에 두둥실 떠다니던 배들의 모습이었다. 정보를 찾아보니 가끔 이곳에서 뱃고동을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도 같이 들어볼 수 있다 싶었는데, 그저 부산항으로의 입항을 기다린 채,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 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미, 유명 포토존으로 잘 알려진 곳들은 사진작가들과 모델들의 차지가 되어 있었고, 다른 곳들을 미리 돌아본 뒤, 다음 차례를 기다려 본다.
여행 중, 마지막 하루의 순간을 이곳에서 천천히 기다려 본다. 아직 여름이 시작되기 전이라 바닷바람은 살짝 차가웠지만, 가만히 카페 자리에 앉아 순간을 즐기는 데는 방해가 되지 않았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 더불어 그 결과물이 사람들과 마주 했을 때, 나오던 반응으로부터의 만족감. 앞으로의 여행 그리고 삶에 있어서는 내가 어떤 방향성을 가져가야 될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중요한 시간이 됐다. 당분간 이와 같은 순간들이 사뭇 그리워질 것 같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