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해 동부에 있는 나라로서
1918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거쳐 제 2차 세계대전 후
구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국토가 해안 산지, 남부 구릉 및 동부 평야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구유고슬라비아연방의 해체와 함께 내전을 거쳐 1991년 6월에 분리 독립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낯설지만 유럽에서는 휴양 국가로 이름 높다.
그래서 성수기와 비성수기 가격차이가 몇배 차이가 나는 극명한 곳이다.
성수기는 6월 국가부터 시작되는 우리가 방문한 시기는 5월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었다.
아주 위아래로 긴 국가 모양으로 서남쪽으로 길게 아드리아해와 붙어있다.
그래서 투어사를 많이 이용하거나 렌트를 해서 여행하고 하는데
크로아티아 친구의 권유로 친구의 차로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첫날은 크로아티아에 도착해서 친구집에서 묵고
둘째날 이른 아침부터 일찍 여행하기로 했다.
아침에 친구 우리를 데리러 와서 짐을 싣고 출발했다.
출발한 국가는 헝가리인데 그 이유가 크로아티아인 친구가
헝가리로 대학을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 북부 오시예크에 거주하는데 헝가리 페치대학교로 통학을 한다.
130km 거리고 한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했다.
국경 넘어 옆나라 대학교를 차로 통학한다니 유럽이라서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가 한다.
크로아티아는 길이 왕복 2차선이다.
그러다보니 모든 차들이 추월하러 역주행을 한다.
국경에 도착했는데 당시 헝가리 학생 임시 거주증이 있었음에도
30분 정도 묶여 있었다. 듣자하니 헝가리와 크로아티아는 보수적인 나라들이라서
엄격하게 검사를 하는 편이라고 한다. 우리보다 늦게 온 다른 차량들은 씽씽 지나갔다.
헝가리인과 크로아티아인은 톨게이트 통과하듯이 넘어다닌다고 한다.
마침내 국경을 벗어나서 또다시 평야를 한참 달려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유럽 친구들이 그렇듯이 크로아티아 친구 집도 마당이 있는 2층 집이었다.
마당에서 키우는 체리와 사과와 배와 자두를 보여주었다.
식사한지 3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식사를 차려주셔서 먹었다.
전통 크로아티아 가성식이라니 신기했다. 초록색이라서 도대체 뭘 넣은 거지 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크로아티아 전통 음식들은 지역마다 다양한데
아드리아 해 연안 지역은 이탈리아나 그리스 같은 지중해 국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해산물과 조리된 야채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내륙지역들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튀르키예 등의 음식 문화가
영행을 미쳐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고 돼지고기 민물고기, 파프리카를 비롯한 야채들이
주 식재료로 쓰인다. 동유럽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기와 야채를 넣고 끓인 굴라쉬가
북부 크로아티아에서는 대중적인 음식이라는 점에 놀랐다.
오시예크에 온 김에 친구가 동네 구경을 시켜주었다.
성벽에 가자고 하더라. 그래서 성벽이 어디있지 했었는데
진짜 성벽이 있었다.
심지어 뷰도 좋았다.
친구는 우리동네 뒷산이야 느낌으로 소개해주는데
신기해서 사진을 잔뜩 찍었다.
터키제국과 헝가리를 막으러 세운 성벽이라고 한다.
다음은 시내로 갔는데 시내에 광장이 있다.
오시예크는 크로아티아 북동쪽에 있는 도시로, 크로아티아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라고 해서 놀랐다.
하지만 헝가리 페치가 헝가리에서 3번째로 큰 도시였던 걸 생각하면 이해가 되긴 하다.
다뉴브강의 지류인 드라바강이 시내를 가지고, 18세기에 세워진 트브라자에 메인광장과
슬라보니아 박물관, 오시예크 고고학박물관, 성미카엘교회 등 많은 유적이 있다.
안테스타르체비치 광장 옆에 성베드로와 성 바울 교회가 있다.
해발 94m에 위치하고 시내 남쪽은 평야고, 북쪽에는 산지가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오시예크에 인간이 살았고 최초로 알려진 사람들이 일리리아 족과 켈트족이었다.
그 후 로마인들이 오시예크에 와서 오시예크를 무르사라고 불렀고,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서기 131년에 무르사를 특권을 가진 식민지의 지위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서로마제국이 망한 후 7세기에 슬라브족인 크로아티아족이 이곳에 정착했다.
최초의 오시예크에 대한 기록은 1196년에 나타났고, 1353년에서 1472년 사이에 코로기 가문의 봉건영토였으며
1526년 오스만 정복자들에 의해 거의 파괴되었었다.
터키인들이 오스만의 동방 스타일로 도시를 재건했고 1566년 술래이만 대재가 오시예크에 유명한 8km 길이의 목조다리를 세웠다. 1809년에는 자유 왕립도시의 지위를 부여받아 19세기 초에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고 한다.
보면서 놀랐던 점은 건물 여기저기에 총탄의 흔적이 가득 있었다.
물어보니 "전쟁 때문에 그래" 하고 마치 어제 누가 넘어졌어 말투로 답했는데
찾아보니 크로아티아에 전쟁이 1991년이 엄청 최근에 일어났어서 놀랍다.
그리고 그 흔적을 그대로 놔두는 것도 놀랐다.
오히려 전쟁의 흔적을 잊지 않기 위해서 남겨놓는다고 한다.
흐리다가 하늘을 뚫고 해가 나오는데 일몰이 멋있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울교회는 1894년부터 1900년까지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붉은 벽돌로 높이가 94m라고 한다. 미사에 3천명 이 참석할 수 있도록
350만개의 벽돌로 쌓아졌고, 자그레브 밖에 있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높은 교회라고 한다.
내전 시기에 100차례 이상 미사일 공격을 받았는데도 미사가 열렸다고 한다.
야외식당에서 술을 마셨는데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게 동양인이 1도 오지 않는 동네니까 그럴만 했다.
나도 우리동네에 외국인 나타나면 너무 신기할 것 같다.
하지만 오시예크는 인기 있는 국내 관광지라고 한다.
유적지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갔던 카페가 운치가 좋았는데
여기서 먹었던 엘더플라워 맥주가 정말 맛있었다.
크로아티아 레몬 맥주도 맛있는데 엘더플라워는 놀라운 맛이었다.
유럽에가 가장 맛있는 술 고르라하면 무조건 3손가락 안에 든다.
이렇게 향긋하고 깔끔하고 달달한 맛이 있다는게 신기하다.
동네를 구경하고 다음날 일정을 위해 빠르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는데
두브로브니크로 질주하며 쭉쭉 내려가는 길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모스타르를 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