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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을 시작할 때 부산에서 고성으로 가는 방향으로 걷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원래의 길이라면 북한까지 이어나가야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통일 전망대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서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의 경우엔 부산으로 향했다. 이유는 뭐 단순했다. 그냥 올라올 때 편할 거 같기도 하고 놀기도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봄철에 시작한 나의 해파랑길을 고려했을 때 봄꽃을 보자면 위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나은 편이었다. 그만큼 남부 지방의 봄철은 이미 지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통일전망대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첫 시발점은 고성군이 되었다. 고성군에서도 통일전망대와 가장 가까운 곳은 대진시외버스터미널이었고, 동서울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진짜 작은 시골 버스터미널인 대진 시외버스 터미널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최대한 전망대에 가까이 간 다음에 다시금 걸어서 길을 올라가기로 했다. 사실 통일전망대 휴게소에서 통일전망대까지는 걸어갈 수 없으며, 출입신고 및 사진촬영금지 등 DMZ와 같이 보안이 필요한 상태다. 그렇기에 해파랑길의 마지막 코스인 50코스는 사실상 걷기와는 무관하다고 봐야했다. 그럼에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일단은 통일전망대 휴게소에서 길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이곳까지 올라왔다가 다시금 본격적인 길을 나선다. 목표는 부산 오륙도. 현재 위치는 강원도 고성군이다.
무거운 가방의 무게가 느껴지지만 포기하지 못하는 즐길거리들
사실 고성군은 딱히 내가 알지 못했고, 알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주변인들과 이야기하자면 다들 공룡발자국이 있는 경남 고성과 헷갈리는 등 남한 기준 최북단의 고성군은 크게 와닿지 못하던 곳이었따. 하지만 해파랑길을 통해 만나게 된 고성군은 먼저 아름다운 바다 색으로 놀라게 되었다. 흔히들 가는 속초와 양양 그리고 강릉과는 다른 바다의 색이 나를 반겨주었기 때문이다. 흐린 날에도 푸른 바다를 보인다? 그건 정말 바다가 맑고 예쁘다는 뜻이었다.
길을 걷다보면 화진포를 만나게 된다. 화진포는 호수와 해변이 어우러진 관광지로 호수 자체는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조용한 산책로를 즐길 수 있고, 바다에서는 해변과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내가 갔던 봄에는 아직 해수욕장을 운영하기 전이긴 했다. 화진포는 겨울철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고 하니 어쩌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람도 적고 매력적인 관광지로 이미 알려졌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올라가다보니 김일성 별장이라고 알려진 한 박물관도 있었기 때문이다.
김일성 별장을 지나 갑자기 산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실 해파랑길을 떠올리고 전체적인 루트 지도를 보자면 그냥 해변을 따라 걷게 되지 않을까 싶었었다. 그래서 따로 길은 찾아보지 않았고, 그저 야영장비와 즐길거리만 챙겨온 상태였다. 즐길거리가 많다보니 아쉽게도 등산 스틱은 필요없겠거니 싶었으나 충격적이게도 산길이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먹거리가 가장 가득한 첫날에 말이다. 힘겨운 발걸음을 이끌고 산길을 타기 시작한다. 스틱은 언제나 필수였다.
화진포가 내려다보이는 한 전망대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조금은 이른 감이 있었고, 별로 걷지 못한 상태였지만, 이 풍경이 좋아 이곳에 멈추기로 했다. 애초에 해파랑길을 국토종주로 선택한 이유는 길이 있으면 그곳엔 좋은 풍경과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풍경을 지나치기엔 아쉬웠고, 시간도 나름 적당하다고 생각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산에서 보이는 동해안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매일 아침 날씨만 도와주면 바닷가의 일출을 보는 길을 걷는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아침으론 간단한 오트밀 죽과 차로 때운다.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다시금 일출공원이라는 곳을 지나게 된다. 내리막을 만날 때마다 잘 정비된 길이 있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무너지거나 가파른 길을 만날 때마다 당황하게 된다.
바다뿐만 아니라 항구를 지나게 되는데 이럴 땐 고즈넉한 항구의 풍경을 더불어 수산물을 들이고 오가는 풍경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신기할정도로 아파트 한채만 있던 지역. 바다에 유난히도 가까워 기억에 남는다.
강릉이나 다른 기타 바다와는 다르게 이러한 바위들이 해변 곳곳에 위치해 있었다.
해파랑길에서 처음 만난 물회. 소면의 양을 통해 정을 느낀다. 신기하게 얼음그릇에 주던 물회집
사실 계속 발가락이 아팠고, 물집이 생겼나 걱정이 되는 판국이었는데 식당에서 내 발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미 물집이 생겼다가 터진 후 맨살이 빨갛게 드러나 있던 것이었다. 근처의 약국을 찾아보고자 했으나 이 작은 어촌 마을에는 없었고, 찾아간다한들 꽤나 먼곳에 위치해 있었다. 심지어 버스는 배차가 두시간 후, 그냥 다음 해변까지 걸어가기로 했고, 휴식과 휴지를 통해 억지로 버텼다.
마침내 만난 한 마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고나 밴드를 사려고 했다. 아주머니는 갑자기 가정용 구급상자를 꺼냈고, 두려움의 상징 그 자체인 빨간약 포비돈을 꺼내셨다.
"아, 그거 말고 혹시 파는건 없으세요?"
"그냥 이거 바르면 된다. 앉아봐."
그런데 놀랍게도 아프지는 않았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커핃 권하시고는 티비에 눈을 돌리셨다. 손님인듯 손님이 아닌 상황. 다시 신발을 신을 때 여분의 밴드를 주시기까지 했다. 응급처치품을 사러 갔다가 응급치료를 받고 떠나는 묘한 상황. 인사를 드리니 웃으며 잘가라고 답하셨다. 무뚝뚝한듯 무관심이 아닌 관심으로 답해주신 아주머니. 내가 다시금 공현진 해변을 들릴 때면 이 마트를 방문하고자 사진을 남겨본다.
원래는 좀 더 길을 나아가고 싶었지만, 체력적으로 특히 발바닥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늦은 점심을 먹었고,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었지만 내 선택지는 회복과 휴식이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이 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얼마 가지 않아 넓지만 사람이 없는 공현진 해수욕장을 이틀차 잠자리로 선택하게 되었다.
저녁은 간단한 과자로 때우며 일기를 쓰고 지도를 통해 다음 목적지를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