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 여행기 작성
새 여행기 작성
JEJU
DARANGSWI OREUM
가을이 오면 제주도는 옷을 갈아입는다. 초록의 푸릇한 잔디는 머리를 깎듯이 모두 깎여 주황빛 토양으로 바뀌고, 오름 위에는 살랑살랑 바람 따라 억새가 황금빛 왈츠를 춘다. 짧디짧은 가을이지만, 제주도는 많은 변화가 생긴다. 곧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다는 듯이. 오늘은 그 가을의 중심에 서 있는 제주 동쪽의 가장 높은 오름 다랑쉬에 대한 이야기다. 다랑쉬도 가을이 왔음을 인지했다. 초록에서 황금빛으로 천천히 옷을 갈아입고 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담기 위해 오른 여정. 오르면서 나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많은 것이 변화되었음을. 분명 2022년 다랑쉬를 올랐을 때만 하더라도 70킬로그램으로 가벼웠는데, 지금 2024년의 다랑쉬 여정은 90킬로그램으로 떠났다. 분명 쉽게 느껴졌던 다랑쉬는 2년의 나이와 20킬로그램의 무게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가을이 오면
다랑쉬 오름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 하여 다랑쉬라 불렸다는 소문. 높다는 뜻의 달에 봉우리의 뜻을 가진 수리가 합쳐져 다랑시가 되었다는 다른 소문. 어떤 유래가 다랑쉬라는 이름을 만들었는지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다랑쉬의 모습만을 놓고 보면 두 가지 모두 맞는 말이다. 매력적인 외풍을 가지고 있는 다랑시는 꼭대기의 분화구가 쟁반처럼 둥글게 패어 달을 떠올리게 하며, 송당 일대 어디서나 보이는 솟은 봉우리와 균형미는 가히 오름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위엄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실제 둥근 굼부리에서 보름달이 솟아오르는 모습은 송당리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이기에 마을의 자랑거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몇몇 기행문을 통해 알려진 다랑쉬는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지닌다. 아름다운 곡선을 지녔으며 멋진 전망을 가진 아름다운 오름 다랑쉬. 지도상 원형을 띄는 오름으이 밑 지름은 1,013m, 전체 둘레는 3,391m로 몸집이 큰 오름이다. 사면은 돌아가며 어느 쪽으로나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산정부에는 크고 깊은 깔때기 모양의 원형 분화구가 움푹 패어있는데, 이 화구의 바깥 둘레는 약 1,500m에 가깝고 화구의 깊이는 한라산 백록담의 깊이와 똑같은 115m라 한다. 제주 설화에 의하면, 설문대 할망이 치마로 흙을 나르면서 한 줌씩 놓은 것이 제주의 오름인데, 다랑쉬 오름은 흙을 너무 많이 놓아 두드러져서 손으로 탁 쳐서 패이게 한 것이 지금의 분화구라고 한다.
아름다운 다랑쉬 오름에서도 제주의 아픈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다랑쉬 오름 아래 있던 다랑쉬 마을(월랑동)이 4·3사건 때 토벌대에 의해 마을 전체가 초토화된 사건이 그것이다. 다랑쉬 오름에서 조금 떨어진 평지에는 다랑쉬굴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리 피난 갔던 마을 사람들도 모두 토벌대가 굴 입구에서 피운 불에 질식사하였다. 1992년 44년 만에 이들의 주검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굴 속 바닥에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민간인 시신 11구와 그릇, 항아리 등 생활용품이 널려 있었다. 이들은 모두 당국에 의해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으며, 현재 다랑쉬 굴의 입구는 폐쇄되어 있다.
다랑쉬를 오르려면 큰 용기가 필요해
아픈 과거와 다양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다랑쉬 오름은 동쪽의 랜드마크와도 같았다. 제주를 여행 온 관광객부터 시작해 제주도민들까지 많은 사람이 오르는 오름이었다. 그렇기에 오름을 오르는 길은 굉장히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다만, 오름 자체의 높이가 일단 높고, 경사가 가팔라 오르기엔 많은 힘이 들었다. 내 머릿속 기억에 다랑쉬 오름은 그렇게 힘든 오름은 아니었고, 꽤 쉽게 올랐던 곳인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무게가 들어서인지 둘 다 인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힘들었다. 왜 사람들이 다랑쉬를 힘들어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그 사람들 앞에 서서 그 누구보다 다랑쉬는 힘들다고 말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다랑쉬. 시작부터 수직으로 이뤄지는 계단을 오르며 다랑쉬의 무시무시한 난이도를 직접 체감했다.
수직을 이루는 계단을 여러 차례 오르고 나면 저 멀리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보이는 오름의 정상 부근에 도착할 수 있다. 내 기억 속에 여기서부턴 정말 힘든 게 없었다. 하지만, 그 또한 내 착각이었다. 다랑쉬의 정상은 둘레길로 이루어져 있는데 둘레길 또한 오르막길에 대단했다. 성산 일출봉과 우도를 뒤로하고 다시 시작된 걸음. 둘레길 중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는 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둘레길 중 가장 높은 곳에 섰다. 그곳엔 산불초소가 있었고,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는 풍경이 있었다. 제주 동쪽 전체를 아우르는 풍경. 이는 다랑쉬 오름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했다. 청명한 가을의 하늘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황금빛으로 바뀌는 제주의 풍경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 그곳이 바로 다랑쉬였다.
산불초소부터 다시금 반대편 둘레길을 향해 걸었다. 오름 바깥의 풍경은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고 있는 동쪽 초원의 모습과 밭농사를 지고 있는 제주의 풍경,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푸른 바다였다. 마치 그림처럼 느껴지는 제주의 풍경. 이는 다랑쉬 오름이 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누가 이 풍경을 보고 다랑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랑쉬 오름은 텍스처가 아름다운 오름이었다. 선명하게 보이는 나무들의 질감, 뒤로 펼쳐지는 볼록한 여러 오름들, 그 뒤로 빛나는 바다까지 선명하게 빛나는 곳이었다. 사랑할 수밖에 없던 오름 다랑쉬. 90킬로그램이라는 무게는 오름을 오르기에 적확한 무게는 아니었지만, 무릎을 희생하면서 오르기에 괜찮은 오름임은 틀림없는 곳이었다. 가을이 오면 계속 생각날 오름 다랑쉬. 이곳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