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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꿈을 꾼 듯하다. 깨고 싶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꿈을
일몰이 번질때 쯤 다시 수코타이 역사 공원으로 향했다. 이미 한낮에 이곳의 모든 사원을 꼼꼼히 탐색했지만, 밤의 역사 공원은 전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낯선 세계의 사원은 또 다른 공간이었다.
그 곳은 기분 좋은 꿈 속을 거니는 듯 몽환적인 세계였다. 깨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꿈이다.
사원에는 은은한 달빛이 내려앉고, 백열 조명은 부처님의 미소를 더욱 온화하게 만들었다. 사원 돌기둥 앞에는 연인의 속삭임처럼 달콤한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역사공원의 밤은 낮보다 더 황홀하고 부드러웠다. 누가 야경이 가장 낭만적인 유적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수코타이 역사공원이라 말하고 싶다.
왓 마하탓의 야경
타이족 최초의 통일왕조, 수코타이
수코타이는 태국 여행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익숙한 이름이다. 수코타이라는 이름을 단 식당과 카페, 호텔, 마사지숍 들이 태국 곳곳에서 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수코타이가 어떤 도시인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수코타이 왕조는 1238년 타이족이 세운 최초 통일국가였다. 방콕에서 북쪽으로 430km 가량 떨어져있다. 수코타이가 세워지기 전 태국 북부지역은 중국, 미얀마 등 이주민들이 세운 여러 왕조들이 난립했었다. 강력한 인드라딧야 왕은 1238년 수코타이에 통일 왕국을 세웠다. 3대 랑캄행 대왕 시절 가장 전성기를 구사했다. 광대한 영역을 통해 동남아시아의 패권국이 됐다. 랑캄행은 지금도 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영웅이어서 대왕으로 불린다. 수코타이 왕조는 아유타야 왕조에 의해 편입되기 전까지 200여년간 지속됐다. 아유타야가 태국의 자부심이라면 수코타이는 태국 역사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수코타이 역사공원 입구에 있는 랑캄행 대왕 동상
당시 화려했던 수코타이 왕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수코타이 역사공원이다. 수코타이 올드타운에 있다.
규모도 엄청나지만, 보존 또한 잘 되어있다. 아유타야 유적지는 대부분 폐허로 남아 쓸쓸한 느낌을 줬다면, 수코타이 유적지는 여전히 살아있는 역동성이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강렬하다.
역사공원은 가로, 세로가 각각 1.8km에 달하고 10여개의 사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초행자라면 처음에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다. 공원 입구에 마련된 리플릿을 보며 경로를 먼저 파악하는게 효율적이다. 면적이 넓어 자전거를 빌려 둘러봐도 좋다.
엄청난 규모의 수코타이역사공원.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는 것도 좋다
이 곳의 많은 사원 중 꼭 한 곳만 봐야 한다면 '왓 마하탓'을 꼽을 수 있다.
수코타이 역사공원의 대표 사원이다. 규모도 가장 크다. 가로 206m, 세로 200m의 벽돌 담장과 해자로 둘러싸여있으며, 사원 안에는 198개의 쩨디(탑)와 여러개의 법당, 불상이 있다. 양 옆에 일렬로 늘어서있는 기둥 행렬은 성스러움을 더해준다. 왓 마하탓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연꽃봉오리 모양의 쩨디다. 람캉행 대왕 시절인 1292년에 완성됐고, 연꽃 쩨디에는 스리랑카로부터 선물받은 부처님 목뼈 사리가 봉안되어있다.
왓 마하탓
왓 마하탓외에도 독특한 아름다움과 기품이 넘치는 사원이 많다.
'왓사시'는 역사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불린다. 호수 위 작은 섬에 지어져 있어, 나무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왓 사시에 있는 '걷는 부처님(Walking Budda) 불상'은 유명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어머니 마야 부인에게 도리천에서 법문을 한 후 내려오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했다. 성스러운 불교 상징물로, 태국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불교도들이 이 불상을 보기 위해 수코타이에 찾고 있다.
걷는 부처님
또한 '왓 씨싸와이'도 빼놓을 수 없다. 인도의 힌두교 성지인 카주라호와 미묘하게 닮아있다. 다만 카주라호의 사원에는 관능적인 조각이 그려져 있는데 반해, 왓 씨싸와이는 여러 불상들이 촘촘하게 조각되어 있다. 당시 수코타이 왕조의 불교 문화 수준이 얼마나 높고 화려했는지 알 수 있다.
왓 씨싸와이
역사공원 안에 있지는 않지만 수코타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원이 또 있다. 역사 공원에서 도보 30여분 거리에 있는 '왓시춤'이다. 8대 왕 탐나라차 2세가 조성했다. 이곳의 특징은 높이 15m나 되는 거대한 좌불상이다. 수많은 기둥으로 둘러싸여 하늘만 뚫려있는 고요한 공간 안에서 좌선 중인 부처님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전한다. 불상의 곡선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을 가진 부처님으로도 알려져있다. 불상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 불상의 머리 뒷편으로 숨겨진 공간에 이르는 계단이 있는데, 탐마라차 2세는 이곳의 구멍을 통해 전쟁터에 나가는 군사들을 응원했다고 한다.
역사공원에서 걸어서 30여분 정도 떨어져있는 왓 시춤
한 앵글에 담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한 좌선불상
아름다운 부처님의 손
일몰이 번질때 쯤 다시 수코타이 역사공원을 찾았다.
수코타이 역사공원은 밤이 되면 수코타이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가 된다. 달빛을 머금은 사원은 조명 속에서 영롱한 빛을 선사하고, 호수 앞에서는 또 다른 분위기인 주말 야시장이 열린다. 시끌법적한 야시장과 고요한 사원의 평온함이 앙상블로 어우러져 낭만적인 음율을 만들어낸다.
이 밤의 낭만이 그리워, 아마도 난 또 다시 수코타이를 찾게 될 것이다.
수코타이 역사공원 야시장
호수를 바라보며 먹을 수 있는 야시장 좌판
낭만적인 수코타이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