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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르 관장 앙리 루종(Henri Roujon)은 그의 친구 말라르메의 권유에 따라 1891년 르누아르에게 룩셈부르그 미술관에 걸 대규모의 그림을 그려볼 것을 제안한다. 룩셈부르그 미술관은 당시 생존한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정식 의뢰를 받은 르누아르는 총 6개 버전의 작품을 완성한다.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걸린 작품도 이 가운데 하나이다. 르누아르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는데 그 과정을 지켜본 미술 평론가 아르센 알렉 상드르(Arsene Alexandre)는 이렇게 회고했다. <르누아르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선의를 갖고 애써준 친구의 공식 요청을 이행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다시 시작했고, 매번 거의 같은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을 생각만 해도 온 몸이 굳어버린 듯 괴로워했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곤 했다.>
이 시기 르누아르의 근심하는 성격은 거의 병적인 상태에 이르며, 주변 사람들은 당시 르누아르의 행동이 매우 거칠고 신경질적이었다고 회상하는데 그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오히려 <피아노 치는 소녀들>에서처럼 매우 조화 롭고 평온하며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부르주아 가정의 소녀들이 거실에서 피아노를 치는 주제는 다소 진부해 보일 수 있지만 르누아르가 주목한 것은 여성들이 피아노를 칠 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앉아있는 여성은 어려운 곡인 듯 살짝 입을 벌리고 목을 악보 쪽으로 내밀고 있다. 옆에 서 있는 여성도 집중하는 듯 보인다. 오르세 미술관에 걸린 <피아노 치는 소녀들>의 완성작에는 건반 위의 장식, 피아노에 놓인 화병, 뒤에 걸린 두꺼운 커튼과 사치스러워 보이는 거실 풍경 등 장식적 디테일이 상당히 덧붙여져 있다. 하지만 이 첫 번째 습작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움이 없다.
르누아르는 등장인물과 배경을 속도감이 느껴지는 붓질로 그려내고 있다. 비스듬한 직선 터치로 표현된 배경은 공원이나 정원의 수풀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며, 배경의 다양한 녹색 음영이 인물의 짙은 색 복장과 대조된다. 상반신만 그려진 인물들은 잔디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들의 관심은 그림 밖에 쏠려 있다. 그의 그림은 남자와 여자의 얼굴을 표현하는 촘촘한 터치처럼 신비롭고 흐릿해서 곧 사라질 것만 같다. 이 작품에서 르누아르는 다른 인상파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빛을 바라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한 화폭에 다양한 색상을 포착해서 담기 위해 야외에서 직접 주제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캔버스에 물감을 던진 것처럼 보이는 재빠른 터치와 사진 작품에서 볼 듯한 독창적이고 과감한 구성은 바로 이 때문이다.
폴 세잔(Paul Cézanne)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앙리 루소(Henri Rousseau)
샤임 수틴의 거의 모든 풍경화에서 나무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이는 샤임 수틴이 나무를 전통적으로 숭배하던 러시아 지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누워있는 나무>는 <커다란 파란 나무>와 함께 화가가 1920년대 나무를 소재로 그린 대표작이다. 샤임 수틴은 1923년에서 1924년 사이 프랑스 남부지방의 카뉴쉬르메르에 머물던 시기에 이 그림을 그렸다. 화면 전체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누워있는 나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틴 만의 강렬한 붓 터치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표현하는데 진가를 발휘한다. 강렬한 소용돌이로 기울어진 도로와 나무, 휘몰아치는 나뭇잎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수틴은 나무 뒤로 보이는 집들을 수풀에 파묻히게 하여, 공간적인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나무 발 밑에 앉아 있는 사람의 작은 형상을 통해 나무의 크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기욤 아폴리네르와 폴 기욤은 함께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예술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했다. 1910년부터 당시 자동차 정비소에서 고용된 폴 기욤은 가봉의 조각품들을 진열하고, 그에게 골동품상 조셉 브뤼머와 피카소를 소개하는 시인의 관심을 끌었다. 상인이 된 폴 기욤(Paul Guillaume)은 자신의 갤러리에 아프리카 조각품들을 전시함으로써 많은 예술가들이 이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게 했고 민족주의적 여론을 거스르는 혁신을 한다.
1917년, 그는 취리히에 있는 코레이 갤러리에서 첫 번째 다다 전시회에 작품을 빌려주었고, 아폴리네르와 함께 조각품 네크레스라는 이름의 사진 앨범을 출판했다. 그의 상인 활동은 1914년 12월 뉴욕의 29l 갤러리에서 현대 미술과 아프리카 조각상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개최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와 같은 화랑과 수집가들의 조언자 역할을 하도록 이끌었으며 알버트 C를 대신하여 작품들을 구입한다. 폴 기욤이 서양 이외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유일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는 아주 일찍부터 그들의 확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그들의 인식에 대한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의 길을 열었으며 비서구 예술은 오랫동안 민족중심주의의 관점에서 고찰되어 왔다. "아르 누아르 예술" 또는 "아르 드 누아르"라는 표현은 특히 아폴리네르와 폴 기욤이 사용한 20세기 초에 시행된 용어다.
방명록에 보이는 한글이 어쩐지 반갑다.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콩코르드 광장에서 루브르 궁전까지 이어지는 튈르리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술관 앞에는 여전히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사전 예약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아직 저 줄 안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원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평온해 보인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튈르리 궁전터에 지어진 두 채의 별관 중 하나인데 본래 오렌지 나무를 위한 겨울 온실로 활용되었다가 1921년 뤽상부르 미술관과 함께 당대 미술품들을 취급하는 모던갤러리로 지정되어 미술관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고 한다. 과거 이러저러한 사연이 많은 곳이지만 지금은 그저 평온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