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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군을 떠올리면 아마 십중팔구 영덕 대게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영덕이라는 지역보다는 그곳에서 잡히는 특산품인 대게가 더 유명한 곳이 바로 영덕이었다. 그런데 울진군이 너무나 특별했던 바다를 선사했던 것처럼 영덕 또한 예상치 못한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물론, 해파랑길 백패킹을 걷는 나로서는 영덕 대게를 넘어 또 하나의 이미지가 사전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바로 블루로드에 대한 존재였다.
블루로드는 영덕의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걷기 여행길이다. 강릉의 바우길처럼 해파랑길이 생기기 이전부터 이 지역의 명소를 엮어 잘 만든 길이었기에, 해파랑길이 생기면서는 블루로드와 겹치는 길이 된건 한편으로는 당연했다.
잘 만들어진 해변의 산책로와 소나무 숲. 야영이 가능해 쉬기 딱 좋았다.
고래불 해변에 주변에는 여러 슈퍼가 있었고, 운좋게도 혼자 먹을만한 삼겹살도 판매를 하고 있어서 즐거운 단백질 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해파랑길이라는 큰 테두리에 있는 느낌이었지만 고래불 해변 이후로는 블루로드만의 색깔을 기대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번에 만나는 길은 오랜만에 ㄷ자 형태로 바다를 벗어나서 산으로 올라갔다가 다시금 바다로 향하는 길이다. 이전의 긴 해안도로 길이 조금은 익숙해지고 반복된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렇게 돌아가는 길이 오히려 볼 게 많다는 생각에 더 기대되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번에 만나는 블루로드는 C코스로 고래불해변에서 축산항까지의 길이었다.
처음에는 대진항까지 바다를 따라 기분 좋게 걸어가는 길이 이어진다. 울진과 마찬가지로 생각보다 예쁜 경북의 바다에 감탄하며 꾸준히 길을 이어갔다.
이때는 저 산 위에 보이는 정자가 그냥 정자일 줄 알았다. 설마 저 산으로 올라갈 줄이야...
이 당시에는 아직 해파랑길이 스탬프가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생겼던 블루로드는 스탬프가 있었고, 인증까지 이어지던 상황이다. 영덕 스탬프 보관소 옆에 위치한 해파랑길 방향표시목이 괜히 아쉬운건 왜일까?
바다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육지로 향하게 된다. 물론 걷는 거리를 생각하면 그렇게 멀리까진 가지 못하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지난 강원도에서 만났던 한 마을처럼, 이곳에서도 괴시 마을이라는 특별한 지역을 지나가기 위해서 방향을 튼 것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블루로드 C코스는 역사와 함께 걷는 길이니 만큼 자연 속의 역사를 걷는 길이다.
괴시 마을
영해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800m쯤 가면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탄생지이자, 조선시대 전통가옥들로 둘러싸인 고색창연한 마을 괴시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원래 이름은 호지촌(濠池村)인데, 목은이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 자신의 고향이 중국의 괴시(槐市)와 비슷하다 하여 괴시로 부르면서 명칭이 굳어졌다. 아직까지 호지골·호지마을·호지촌으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1260년(고려 고종 46)경 함창(咸昌)김씨가 처음 터를 잡은 뒤 수안(遂安)김씨, 영해신씨를 거쳐 1630년(인조 8) 무렵 영양(英陽)남씨가 정착하면서 영양남씨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은 주봉인 동쪽의 망월봉(望月峰) 아래 여덟 팔(八)자 형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전체 100여 호에 3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이 가운데 30여 호가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주민 역시 100여 명이 영양남씨다. 마을 앞에는 동해안의 3대 평야 가운데 하나인 영해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어, 이 마을이 예부터 세도가들의 터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 - 두피디아 두산백과
21년 6월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며 이 마을에서 태어난 목은 이색의 호를 따 목은 문화제도 열고 있따. 고택들이 대부분 200년 전에 지어진 것이며 ㅁ자의 형태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사대부가의 건축 양식을 잘 볼 수 있으며 국가 및 도 문화유산 자료가 14점이나 있는 역사와 유래가 깊은 전통 마을이 바로 괴시 마을이다.
괴시 마을을 지나고는 본격적으로 산길을 타기 시작한다.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길은 조금씩 고도를 올리기 시작하고, 동네 뒷산 마냥 특유의 분위기와 많은 쉼터가 트레커를 반기고 있었다. 산을 올라가는 내내 바다가 계속해서 고개를 내밀었고, 잘 만들어진 길에는 해파랑길과 블루로드 그리고 산악회의 다양한 리본들이 꾸준히 내가 가는 방향을 잃지 않게 안내자로서 다양한 색과 함께 길을 채워가고 있었다.
이전의 길들은 이러한 산 길을 걷다가 산을 넘어가는 차도를 만나 다시금 차도를 따라가는 길이 있었지만, 이 블루로드는 그 산과 산 사이의 구름 다리를 통해 계속해서 사람이 걷는 길을 갈 수 있게 안배해 놓았다. 그만큼 쉬는 곳도 많고 풍경도 좋은 이 길은 왜 블루로드가 조금식 여행자들에게 명성이 차차 쌓여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계속해서 산길을 걷다보면 고래불 해변을 떠났을 때 본 것 같은 정자에 도착해 다시 한번 푸른 동해바다의 절경을 즐 길 수 있게 된다. 그 후 얼마 가지 않으면 오늘의 또 다른 역사를 만나는 대소산 봉수대를 만나게 된다. 재밌는 점은 현대판 봉수대라고 부를 법한 통신사 전파탑이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대소산 봉수대
1982년 8월 4일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초기에 만든 것으로 영덕 축산포(丑山浦) 방면의 변경 동태를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남산(南山) 봉수대까지 알리던 지방 봉수였다.
대소산은 해발고도 282m의 영덕 남동쪽 해안의 주봉인데, 산의 정상부에 방어벽을 돌로 쌓고, 그 안에 원추 모양의 지름 11m, 높이 2.5m의 봉돈(烽墩)을 쌓았다. 봉수대의 전체 면적은 2,826㎡이다. 남쪽으로는 별반(別畔) 봉수대, 북쪽으로는 평해의 후리산(厚里山) 봉수대, 서쪽으로는 광산(廣山) 봉수대를 거쳐 진보(眞寶)의 남각산(南角山) 봉수대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여러 봉수대는 지방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데, 그 중 대소산 봉수대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조선시대의 통신수단을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 출처 두산백과 두피디아
대소산 봉수대
봉수대에서 내려가는 길에는 저 멀리 C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축산항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정말 C코스는 초반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산길이지만 그래도 지루함없이 산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잘 만들어진 길을 따라 내려가면 다시금 바다를 만나게 되고 여러 보급이 가능한 축산항을 만나게 된다. 규모를 설명하기엔 조금 애매하지만 중국집이 있을 만큼 관광지가 아닌데도 발달되어 있는 항구였다. 이 항구에서는 다음 블루로드의 시작점인 죽도산이 보이고, 봉수대도 보이는 곳이다. 다음 블루로드는 블루로드에서 가장 유명한 B코스로 향한다.
가야하는 죽도산과 등대
저 멀리 보이는 전파탑 그리고 봉수대
관광지로 발달 된 항구 상권이 아니라 가능한 중국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