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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29키로를 걷고 24키로를 가야하는 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서둘러 장비를 정리하고 길을 나선다.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단 하나. 오늘 서울에서 지인들이 찾아오기로 한 것이다. 심지어 이미 펜션을 예약하여 같이 하루를 놀기로 했고, 그 숙소는 마침 해파랑길 근처에 위치해 있는 곳이었다. 비록 4km를 더 가야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비교적 가장 가깝고 가성비가 좋은 곳으로 마련한 장소였다.
지인들은 서울에서 포항까지 차를 타고 오고 천천히 오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걷는 속도보다 느릴리가 없느 상황. 나를 위해 1박 2일로 포항까지 오기에 고마운 마음과 서둘러 만나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서두르게 되었다.
해안을 조금씩 벗어나는 길은 서서히 바닷가 위에 만들어진 언덕의 차도로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시골스러운 길보다는 뭔가 숙박업소가 많은 언덕이라 어쩌면 주변 지역과 연계된 관광지가 아닐까 싶었다.
도로를 따라 길을 걷던 중 참 많은 길을 만나게 된다. 연오랑길, 세오녀길, 해파랑길, 호미곶 반도길 등 이 구간은 조금 너무 많은 길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대신 그만큼 많은 길이 있어 선택지마냥 앞에 놓여진 느낌이 있었다. 내가 걷던 해파랑길이 아니라 다른 길도 좋은 느낌이 있기 때문에 지도를 보고 중간에 합류할 수 있다면 다른 길을 섞어서 걸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텐트치기 좋은 흥환해변을 지나 도착한 흥환리 보건소. 7시에 출발해 두시간만에 도착한 이곳 많은 거리를 가기 위해 슈퍼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려고 한다. 아직 거리는 15키로나 남아 있었다.
이왕이면 해파랑가게에 가서 반가운 피자빵을 산다.
"이야 고생하십니다. 어디서부터 오셨어요?"
"고성에서 부산까지 걷고 있습니다 하하."
"와.. 완전 사람하나 메고 다니시네... 얼마전에 외국인 한 명도 그렇게 다니고 있더라구요."
"어!!! 혹시 영국에서 온 알렉산더 아니에요?"
설마 했더니 아저씨가 말한 사람이 알렉산더가 맞았다. 영덕에서 나도 그를 만났다고 하니 같이 웃는 아저씨. 같이 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면서 반갑기도 했다. 알렉산더는 본의 아니게 자기가 유명인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쉼터 이후 본격적으로 마을 속으로 들어간 뒤에는 다시금 산을 넘어가야 한다. 산을 넘기만 하면 호미곶을 갈 수 있으니 조금만 힘을 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산은 산이고, 아무리 길이 잘 깔린 임도길이라도 산은 산이었다. 생각보다 힘들었고, 길은 임도이니 만큼 산을 둘러둘러 가기 시작했다. 주말이기도 하고 무슨 행사 혹은 모임이 있는지 임도길을 따라 산악자전거 MTB가 유난히 많이 지나갔다. 아마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꽤나 유명한 루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만큼 잘 만들어진 임도가 있는 산길이었다.
긴 임도길을 지나 산길로 꺾었던 길은 급경사의 내리막을 통해 한 노인 요양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안그래도 부족한 물 덕에 걱정이었는데 이곳에서 충분한 식수를 채울 수 있었다.
대보 저수지를 지나 이제 호미곶을 향하는 길. 약 8키로가 남았지만, 찾아오기로한 형은 이미 포항시에 도착한 상태였다. 이제 단 두 시간이면 만날 수 있는 거리. 이미 많은 거리를 걸었고, 피곤한 상태지만 마음만큼은 즐거웠다. 그 때 갑자기 옆을 지나가려던 트럭이 갑자기 멈춰섰다.
"타고 내려갈랑겨~?"
"아니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아저씨는 이미 내 반응을 예상하셧는지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다시금 임도를 따라 차를 몰고 가셨다. 힘들어보이지만 너는 이유가 있을거야라는 뭔가 공감의 미소가 느껴지는 멋진 모습으로 나에게 기억이 남게 되었다,.
호미곶에서 바다를 보며 잠깐의 여유를 즐기다 드디어 전화가 왔다. 먼 거리를 달려온 지인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순례길에서 만난 인연이고, 해파랑길 또한 비슷한 거리인 770km의 해파랑길을 걷고 있었던 나. 한층 더 못생겨졌다는 인사말이 괜히 반가울만큼 도보여행중 만난 지인은 최고의 만남이었다. 일단은 땀에 쩔은 나를 위해 먼저 예약된 펜션으로 향하게 되었고, 씻은 다음 오늘 밤을 보내기 위한 맛난 안주와 먹거리를 사러 가기로 했다.
"야, 걱정마. 내일 한치의 아쉬움도 없을 만큼 픽업한 곳에 그대로 보내줄게."
역시 도보여행자였던 우리기에 너무나 친절한 말을 해주었다. 결국 난 4km의 손실도 전혀 없이 내일 다시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동생에게 건네진 내 배낭. 내가 메고 다닐 때는 몰랐지만, 참 무식하게 크긴 하다. 좌측에는 백패킹용 의자. 우측에는 우쿨렐레.
가방 바로 앞에 각진 것은 이전에 소개했던 책 두 권이다.
그동안 야영 혹은 모텔만을 전전긍긍했떤 나에게 펜션의 뷰는 새로운 선물과도 같았다. 역시 돈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같은 바다 같은 곳을 가도 이렇게 장소가 다르면 보이는 풍경이 다르니 말이다. 물론, 보이는 풍경이 다른 이유에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라는 존재가 가장 크다.
때마침 핫팩이 떨어진 상황이라 핫팩 좀 가져와달라고 말했다.
한껏 깨끗해지고, 펜션 사장님의 배려로 세탁기에 내 빨랫감을 다 돌린 후 차를 타고 죽도시장으로 향했다. 죽도시장은 포항에서 가장 큰 시장이자 유명한 관광지인데 아쉽게도 해파랑길은 이 죽도시장을 경유하지 않는 상태였다. 덕분에 큰 시장을 구경하고 저녁에 먹을 다양한 먹거리를 살 수 있었다.
얼마만에 마음 편하게 마시는 술인가. 물회 혹은 회덮밥에서 먹는 회가 아닌 제대로 된 회를 먹고, 혼자서 먹기 힘들던 숯불고기까지 먹은 하루. 저녁에는 방으로 이동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비록, 긴 시간을 걸으며 가끔 여행에서 만난 지나치는 인연들과 몇 번의 대화가 있었지만, 그동안 단내가 어색할만큼 대화는 끊이지 않았고, 많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 날은 그 외로움과 반가움 속 마음이 많이 풀어졌는지 속 이야기도 하고 참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행에서 만난 우리는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 일상에서 여행의 인연은 단편집처럼 끝이 나는 경우도 있고, 꾸준히 연재되는 잡지처럼 계속 연을 이어가기도 했다.
순례길에서 만나 같이 길을 걷고, 혼자 걷는 이 길에 찾아와준 인연들. 참 고마운 사람들이며, 도보여행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라면을 비롯해 먹거리도 챙겨와준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