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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재개관 행사로 만나본 태조어진 진본
2024년의 가을은 정말 짧았다. 정확히는 언제 있었나? 싶을 만큼 무더운 날씨의 연속이었다. 물론 일교차가 상당했기에 옷차림이 마냥 가벼울 순 없었지만, 11월 초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전주의 날씨는 여전히 여름과 가을 그 어딘가의 경계를 유지 중에 있었다. 오죽했으면, 서울은 분명 가을이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었지만, 전주 향교의 은행나무가 아주 파릇파릇한 것을 보고, 두 눈을 의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갈수록 이런 나날들이 이어질 거라던데, 근심과 걱정이 쌓여만 간다.
참 이상했다. 분명 몇년 전 가을날의 전주는 분명 일맥상통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니었다. 전주천 주변 향교의 그것을 보고 경기전의 은행나무를 보니, 이곳은 분명 가을이였는데 저기는 아직 여름이였으니 말이다. 헌데, 날씨는 두터운 가디건이 어울리는 날씨가 아니였다. 카메라만 아니였으면, 숙소에 다시 들렀다가 옷을 놓고오고 싶을 정도. 그러는 와중에 올해 초, 다짐했던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경기전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 어진
전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나로선 경기전에 대한 기억이 참으로 많다. 그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 경기전 전각에 보관됐던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그 주변을 가득 채우던 다른 조선왕들의 초상화. '어진' 이라 불렸던 그것은 오직 전주에서만 볼 수 있던 것들이니, 보관 상태가 이래도 되나? 라는 생각은 당시에도 가졌던 것 같다. 이후, 그것들을 조금 더 소중케 보관코자 경기전 조금 한적한 구석에 공간이 생겼으니 그것이 바로 어진박물관이다.
'어진' 이라 불리는 조선왕들의 초상화는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봐도 몇 개 없었던 것 같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살펴봐도 한 명의 왕이 상당히많은 초상화를 남긴 것을 알 수 있었는데, 태조의 경우도 그러했다. '풍패지관' 새로운 하늘의 뿌리가 시작된 곳인만큼, 전주를 포함 전국 8도 여러곳에 태조의 어진을 보관케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어진의 진본은 어진박물관에 보관중인 한 점 뿐이며, 다른 왕의 초상화들도 남아있는것들이 없다고 전해진다.
올해 초, 경기전을 찾았을 때, 어진박물관도 같이 구경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때 까지만해도 한창 리모델링공사가 진행중이었으며, 예정된 마무리 날짜도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움을 머금은 채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운이 좋게도 들어온 호텔 협찬을 통해 전주를 이틀 일정으로 머무를 수 있었는데, 마침 그 때가 어진박물관 개관일정과 겹쳐 태조 어진의 진본을 눈 앞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 정말 얼마만에 보는건지 모를만큼, 예전에 할아버지와 경기전을 찾아 봤던 그 순간이 떠오르는 듯 했다.
어진과 관련해서 정보들을 찾아보면,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진본이 남아있는 경우는 저것이 유일하다. 삼국시대의 것은 물론, 고려시대에 남아있는 관련 초상화들은 세종대왕이 한꺼번에 모아 불태웠거나 땅에 묻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기에 그 가치는 굳이 두 번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인데, 오직 특별한 날에만 공개한다는 그것을 이번 여행에서 만나게 된다니, 다가오는 연말도 아주 알차게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리모델링을 마친 어진박물관은 상당히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간략히 제작된 왕의 어진들과 이와 관련된 유물 그리고 포토존으로 활용된 일월오봉도와 어좌만이 놓여있던것 같은데, 방문객들을 위한 편의시설 그리고 지하 1층에는 이와 관련된 상세 제작 과정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러운 구성이였다. 게다가 아래층에서는 특별전시도 열리고 있었는데, 어릴적 사회 교과서에서 봤던 것들을 한꺼번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2. 추억여행
전주의 특산물 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한 눈에 만나볼 수 있었던 전시관. 올해 여름, 상당히 무더웠음에도 찾은 김해와 각 지역에서 활동중인 작가 및 장인 분들과의 협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곤 나는 자연스레 전주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모든 것들을 한 눈에 담아 볼 수 있어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요즘, 여행 트렌드를 살펴보다 보면, 그 지역색이 조금씩 묻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잘 다듬어진 결과물들에 한국적인 매력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바로 옆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이 바로 디지털 어진을 만드는 공간이였다. 평일이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별도의 시간이 정해져있는것을 보면, 이용객들이 상당한 듯 했다. 아니나다를까 평일이였음에도 사람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신기했다. 그리고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마냥 무거우면서도 중후한 분위기를 탈피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이 많이 보이던 체험활동의 공간.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분명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들이 피부로 와닿고 있었다.
여행을 갈 때, 무엇을 먹으러, 즐기러는 많이 가는 것 같다. 물론, 아름다우면서도 수려한 풍경을 '보러간다' 라는 문장도 어색하지 않지만, 올해들어 문득 '문화재' '작품'을 보러간다 라는 문장은 아직 어색하다. 하지만, 대구의 간송미술관 태조의 어진 경주의 수막새 등, 그 변화가 국립박물관에서 관찰됐는데, 어진박물관의 태조어진을 보고선 이것도 국내여행에서 가능하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한 때,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고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간송미술관에 줄을 섰던 것 처럼 말이다.
좀 더 세련되게 바뀐 공간과 새로운 관점을 내게 건내줬던 곳. 오래도록 이곳에 살았음에도 요즘 내가 바라보는 전주는 상당히 다르게 와닿는다. 팔복동 예술촌의 그것들은 물론, 조금 더 세련되게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의 그것들까지. 가치있는 것들을 담은 그릇들에 세련미가 담기니, 사람들이 자연스레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문득, 큐레이션에 들어갈 때, 여행의 계획을 짤 때, '작품을 보러가는 여행'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