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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양관(阳關)을 본 뒤에 옥문관(玉门關)으로 향했다. 양관과 옥문관은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돈황 이관(二關)이라 부른다.
오늘은 돈황 이관을 포함하여 돈황에서 200km가량 떨어져있는 단하지질공원까지 돈황의 외곽을 크게 한바퀴 도는 코스로 여행중이다. 이동거리가 길길어 차를 오래 타다 보니 점심을 먹고 난 뒤부터 슬슬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새벽에 살을 에는 매서운 바람에 덜덜 떨다가 한낮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니 극심한 졸음도 몰려왔다. 옥문관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창밖으로 보여지는 끝없는 사막 풍경이 꿈인지, 내가 꾸고 있는 꿈이 진짜 꿈인지 알수 없는 기이한 시간들이었다.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 떠오른다.
중국 여행은 튼튼한 체력이 필수다.
한 도시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보니 이동 시간이 만만치 않다. 유적지 한 곳만 해도 버스를 타고 구경해야 할 정도로 크다보니 체력소모가 심하다. 걷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중국 여행은 고행이 될 수도 있다. 새벽부터 움직인 탓에 몸은 힘들지만, 멋진 장관을 놓칠 수 없어 다시 기운을 차려보기로 한다.
옥문관은 양관과 함께 서역으로 가는 통로였다. 한나라 무제(武帝)가 서역 길을 개척하고 '하서4군'을 세울때 처음 세워졌다. 이후 옥문관은 많은 왕조의 국경 관문 역할을 했다.
시안에서 출발한 실크로드는 장예, 가욕관을 지나 돈황에서 갈라지는데 북쪽으로 가면 옥문관을, 남쪽으로 가면 양관을 지난다. 옥문관과 양관, 즉 돈황 이관(二關)을 지나면 비로소 험난한 서역의 길이 시작된다. 이관 너머로는 거대한 천산산맥과 광활한 파미르고원, 죽음의 사막인 타클라마칸 사막이 기다리고 있다. 죽음을 가슴속에 품고 가야 하는 험난한 길이다.
입구에는 옥문관 전체 안내 지도가 붙어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규모다. 방반성(方盘城)까지 12km, 한창성(漢长城)까지는 반대편으로 5km로 사방 20여km나 된다. 소도시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거대한 규모에 또 다시 압도당한다.
엄청난 규모의 옥문관 유적지
토성 형태인 한창성
옥문관 입구에는 당나라 시인 왕지환(688~742)이 지은 <양주사(凉州詞)>('출새곡(出塞曲)'이라고도 불림)가 적혀있다. '출새'란 중국 북방 오랑캐와의 경계를 넘어가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 구절에 옥문관이 나온다. 양관을 지나 서역으로 떠나는 벗을 노래한 왕유의 <위성곡>만큼 절절하진 않지만, 봄빛 마저 건너기를 두려워하는 서역의 험난함을 짐작할 수 있다.
黃河遠上白雲間 황하원상백운간
(황하의 먼 상류는 흰 구름 사이로 흐르고)
一片孤城萬仞山 일편고성만인산
(한 조각 외로운 성 만길 산위에 섰네)
羌笛何須怨楊柳강적하수원양류
(강족의 피리소리 어찌 그리 한이 많은지)
春光不度玉門關 춘광부도옥문관
(봄빛은 서역관문인 옥문관을 넘지 못하는데)
1907년 영국 탐험가인 스타인(수많은 실크로드의 유물을 빼앗아가 실크로드의 악마들로 불리는 인물이다)은 돈황 북서쪽 약 100km 지점에서 옥문도위(玉門都尉)라는 문자가 있는 목간(木簡)을 발견하고, 이곳이 옥문관임을 밝혀냈다. <서유기>의 현장법사는 옥문관을 지나 투르판 고창으로 향했다.
경내는 옥문관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창밖으로는 누런 황토로 가득한 단조로운 풍경이 끝없이 흘러간다. 가슴 속에 큰 구멍이 뚫려 그 사이로 차디찬 바람이 불어오는 듯 쓸쓸하기만 하다. 너무나 황량하고 몽환적인 풍경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여전히 난 꿈에서 깨지 못하는 것일까. 2천년전 홀로 이 길을 걸었을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꿈속을 거니는 것일까.
옥문관에 가기 전 한창성을 찾았다. 한창성은 한나라때 축조되어 지금은 폐허나 다름없다. 녹아내린 촛농처럼 흘러내린 흙더미는 세월의 무상함이 담겨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 이 곳에서 버텨왔을까. 사막의 매서운 기후를 온몸으로 견딘 성벽의 잔해에 왠지모를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성벽의 부스러기는 마치 낯선 세계에 온 듯한 풍경이다. 이 느낌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외로우면서도 강건하고, 당당하면서도 슬픔이 느껴지는 이 풍경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진다.
이 풍경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디선가 짙은 갈색의 개 한마리가 나타나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다가왔다. 마치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려는 듯 그 개는 한동안 내 앞에서 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한참을 나를 보던 개는 잠시 후 또 다른 여행자에게 달려갔다. 멀어져가는 개의 뒷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하늘거렸다.
말라버린 고목이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붉은 글씨로 옥문관유지(玉門關遺址)라 써있는 거대한 암석이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암석 뒤로는 사다리꼴 모양의 옥문관 성채가 있다. 동서 24.5m 남북 26.4m, 현재 남아있는 높이는 10여미터로 면적은 약 200평이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서역의 길이 시작된다. 전망대에 오르면 타클라마칸 사막의 지평선이 흐릿하게 보인다. 혜초 스님은 저 사막을 넘어 옥문관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얼마나 고되고 힘든 길이었을지 짐작할수도 없다.
거침없는 대자연의 감동을 가슴에 담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사람들이 없었다면 마치 낯선 행성에 불시착했다고 느꼈을 만한 풍경이다
오랜 세월로 무너져내린 성벽
어디선가 나타나 나를 위로해주고 갔던 친구
옥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