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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성 보계(宝鸡)시에 법문사(法門寺)라는 오랜 사찰이 있다. 법문사에는 부처님의 지골사리(指骨舍利)(손가락뼈)가 모셔져있다. 부처님의 신체인 진신사리(眞身舍利)는 우리나라 통도사를 비롯해 아시아 여러 사찰에 나뉘어 있지만, 지골사리는 법문사가 유일하다. 그래서 법문사에는 늘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법문사에 지골사리가 모셔져있게 됐을까.
인도 마우리아 왕조 3대 황제인 아쇼카왕(기원전 304년~기원전 232년경)은 형제 99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고 불교에 귀의했다. 그리고 불교 전파에 적극 나섰다. 그는 부처님의 사리를 아시아 곳곳에 보낸다.
석리방(釋利房) 등 18명의 스님들은 진신사리 19과(부처님의 사리는 '과'로 부른다)를 가지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으로 향했다. 위험천만하고 힘든 여정이었지만, 당시 중국은 불교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시안까지 가지 못하고 인근 성총이란 곳에 부처님의 사리를 묻게 된다.
한편, 인도 서북부 안식국(安息國)에는 안세고라는 왕자가 있었다. 그는 왕위를 버리고 불교에 귀의해 역경성(譯經僧)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가 성총에 머무를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광채가 솟아났다. 그는 바로 그곳을 파봤더니,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7개의 푸른 벽돌과 진신사리가 나왔다. 그 중 지골사리를 봉안해 법문사(당시에는 아육왕사(阿育王寺)로 불렸다)를 세웠다. 후한(後漢, 147~189년) 시대였다.
법문사는 당나라 때 황실 사찰로 전성기를 누렸다. 5천여 명의 승려가 있었으며 30년에 한번씩 황실주도의 공양의식도 열렸다.
공양을 위해 법문사에서 서안으로 지골사리를 운송할 때면 백성들이 길을 가득메워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법문사는 당나라의 몰락과 함께 쇠락해졌다. 9세기 후반 당 의종은 법문사 진신보탑 지하궁전을 봉쇄했고 이후 지골사리의 존재는 전설로만 전해져왔다. 1987년 중국 정부는 폭우로 무너진 진신보탑(眞身寶塔)을 보수하던 중 석문(石門) 안 지하궁전에서 당나라 황실의 화려한 유물을 무더기로 발견했다. 그리고 부처님의 지골사리도 발견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했다. 지하궁전에 봉안된 불지사리(佛脂舍利) 4과 가운데 세번째로 발굴된 사리가 부처님 왼손 중지로 판명됐다. 함께 발견된 진신지문비(眞身誌文碑)에 그 내용이 적혀있다. 당시 중화인민국의 5대 국가주석이었던 강택민(장쩌민, 江澤民)은 이를 두고 '천금과도 바꿀 수 없다'며 흥분했다.
법문사에 도착해 먼저 사찰내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동시에 천여명이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 이곳은 우리 사찰의 무료 공양간과 비슷하다. 법문사에 온 누구나 음식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 자리를 잡고 앉으면 자원 봉사자들이 식탁 위에 놓인 그릇에 밥과 반찬을 조금씩 담아준다. 단촐하지만 한끼 식사로는 부족함이 없다.
법문사에서는 누구나 무료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조촐한 한끼 밥상
법문사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거대한 마름모 꼴의 합십사리탑(合十舍利塔)이다. 두개의 거대한 손이 합장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높이 148m로 50층 건물 높이다. 대만의 유명 건축사 이조원이 설계했으며 2009년 5월 완공됐다.
지골사리는 합십사리탑 중앙탑에 모셔있다. 법문사는 정기적으로 지골사리를 공개하는데, 아쉽게도 내가 방문한 날에는 볼수가 없었다.
사실 합십사리탑 앞에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상상하던 고대 사찰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뭐든지 거대한 건축물을 좋아하는 중국은 법문사 복원과 합십사리탑 조성 비용에 무려 4천억원을 투입했다. 불심(佛心)보다 과시하고 싶은 욕심(慾心)이 앞서는 듯해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천천히 합십사리탑으로 향했다. 탑까지는 길이 1.23km에 달하는 넓직한 도로가 있다. 불광대도(佛光大道)라 불린다. 20여분 정도 걸어가야 하지만 여행자들 대부분 전동차를 이용해 편하게 합십사리탑에 도착한다.
마치 거대한 현대 조각품을 보는 듯했다. 거대한 황금 불상 위에 지골사리가 모셔있지만, 어쩐지 현대적이고 삭막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불상앞에서 기도를 드린 뒤 다시 불광대도를 걸어 왼쪽에 있는 진신보탑으로 향했다. 당시 법문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다. 서안의 대안탑(大雁塔)과 비슷한 전탑이 있고, 주변으로는 여러 법당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복원 공사를 끝낸 뒤라 사찰은 세월의 흔적은 사라지고 깔끔한 모습이었지만, 푸른 녹음속에 자리한 사찰에 오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하다.
합십사리탑까지는 넓직한 불광대도가 이어져있다
전동차를 타고 합십사리탑까지 갈 수 있다
50층 건물높이에 육박하는 거대한 합십사리탑. 가운데 탑에 부처님의 손가락뼈가 모셔있다
합십사리탑 안에 있는 불상상
합십사리탐 앞 연못에서 보면 마치 현대 미술품을 보는듯하다
내부에는 진신보탑 지하궁전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이 있다. 당나라 황실의 화려함을 느껴볼 수 있다. 박물관을 나와 오른쪽으로 꺽어지면 지하궁전 입구가 나온다. 별도의 입장권이 필요하다.
천여년 넘게 부처님의 사리가 잠들어있던 곳이라니, 입구에서부터 가슴이 뭉클해진다. 분주한 외부와 달리 이곳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아, 내부는 내 심장소리가 그대로 울려퍼질 정도로 고요했다. 오히려 이 고요함 덕분에 내 마음은 편안해졌다. 비록 지골사리를 마주하는 행운은 얻지 못했지만 , 이 편안한 마음만으로도 더없이 충분한 하루였다.
법문사 내 박물관
지골사리를 모셔 서안으로 향하던 모습
지하궁전에서 발굴된 황실유물들
지하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