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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
ARARIO MUSEUM
제주에는 탑동이라는 곳이 있다. 옛날에 이 지역은 부둣가로 부를 축적한 동네지만, 후에는 낙후되어 죽은 동네와 다름이 없었다. 그런 이곳이 지금은 다시 부활했다. 그 부활에는 이곳 아라리오 뮤지엄이 빠질 수 없다. 폐건물이던 탑동시네마를 하나의 갤러리로 만들었고, 주변 상가들엔 힙한 브랜드를 입점 시키고,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맛집들로 채웠다. 그렇게 되니, 탑동은 젊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인기 관광지가 되었다.
세계 100대 컬렉터, 씨킴
아라리오 뮤지엄의 창시는 김창일, 씨킴의 숨결이 묻어있는 곳이다. 그는 "예술은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자수성가로 부를 쌓은 그가 미술품 수집가이자 갤러리 운영자로 나선 이유다. 그가 갤러리스트로서 첫 출발을 한 아리아오 천안 갤러리 옆 신세계백화점 광장에는 키스 해링, 데미언 허스트, 수보드 굽타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설치돼 있다. 거장들의 작품을 갤러리를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료로 선사한 것이다.
‘공간 사옥’ 매입 일화에서도 그의 예술 철학을 읽을 수 있다. 2013년 건축가 김수근의 공간 사옥이 경매에서 유찰됐다는 신문 기사를 접한 씨킴은 곧바로 공간 사옥 측에 연락해 건물을 인수했다. 공간 사옥 매입을 결심하기까지는 9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대기업도 눈독 들이던 공간 사옥을 즉시 사들인 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단장해 시민 품에 선사했다.
그런 씨킴은 제주 탑동에 죽어있는 폐건물을 사들였다. 탑동 시네마, 동문 모텔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의 컬렉션인 여러 미술 거장의 작품이 이곳 아라리오 탑동 시네마에 있다. 그곳에선 데미안 허스트, 키스 해링, 우고 론디노네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탑동 시네마는 총 5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1층 안내 데스크에서 티켓을 구매하면, 5층부터 뮤지엄을 관람하라고 안내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는 길. 그 안에는 씨킴의 예술 신념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영상 창작물을 만날 수 있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금세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5층에는 기획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권오상: 조각(에 관한) 리포트 2024년 11월 12일부터 2025년 9월 21일
이번 아라리오 뮤지엄 전시를 방문한 것도 권오상 작가의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권오상 작가에 대해 아는 것도, 그렇다고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포스터에 끌렸다. 사진인 듯, 그림인 듯, 조각이었던 작품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궁금했다. 아라리오 뮤지엄은 권오상(b. 1974)의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두루 조망하며 그의 예술적 여정을 돌아보는 《권오상: 조각(에 관한) 리포트 (GWON Osang: The Sculptural Report)》를 개최했다. 권오상은 전통적인 조각의 형상과 형태, 재료에 의문을 던지며 동시대적 조각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며 실험해 왔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조각의 재료로 도입하며 조각의 범주를 확장시켰다. 이번 전시는 대학생 시절 가벼운 조각을 만들어보고자 시작했던 리포트 같은 작품부터 그가 경험하고 영을 받은 미술사적 명작을 재해석한 신작까지 아우렀다.
아라리오 뮤지엄 4층에는 거대한 장환 작가의 작품과 백남준 작가의 작품들로 가득했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 작품은 영사실에 놓여있었다. 정신이 없는 듯하지만 그 안에서 세계관을 느낄 수 있는 백남준 작가의 예술 세계. 비디오 아트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틀을 깨준 그의 노고가 작품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 옆에는 장환 작가의 작품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최소 5미터는 넘어 보이는 작품의 크기는 보는 순간 압도당하게 한다. 그의 작품은 고향에서 친근한 재료로 사용했던 가축의 가죽들로 만들어졌다. 또 그의 작품 중 가계도는 자신의 근본을 찾아가는 작품이었다. 자신의 조상 이름을 얼굴에 새겨 어느 순간 검게 물드는 이 작품은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하게 했다.
그 아래층에는 키스 해링의 작품과 앤디 워홀의 작품이 눈을 사로잡았다. 앤디 워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릴린 먼로 팝 아트가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옆에는 키스 해링의 작품이 존재했다. 키스 해링의 작품은 다리 하나가 뱀의 모양으로 배를 뚫고 관통하는 모양새인데 그의 작업 세계를 생각해 보면, 에이즈나 사회의 어려움들을 작품에 녹여내곤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에이즈에 관한 생각을 작품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수박을 연상케 하는 색이 아름다웠지만, 작품의 내면을 심도 있게 생각해 보면 그리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았다.
1층에는 우고 론디노네와 데미안 허스트, 그리고 코헤이 나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코헤이 나와는 루브르 박물관의 삼각형 유리 천장에 장식된 장신구를 만든 작가로 조형물을 조각하는 작가였다. 그는 죽은 사슴에 투명 유리구슬을 붙여 다시 한번 생을 연장시키는 작업물을 만들었다. 작은 사슴부터 커다란 사슴까지 만날 수 있었던 그의 작품은 존귀하고 고귀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엔 우고 론디노네 작품과 데미안 허스트 작품이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보통 원형에 색으로 작품을 만드는 건 우고 론디노네가 많이 하는 작품인데, 오히려 반대였다. 기괴한 동상은 우고 론디노네 작품이었고, 원형에 페인트로 패턴을 만든 작품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었다. 이 또한, 씨킴의 의도처럼 느껴졌다. 그들을 대표하는 작업물을 반대로 두면서 착각을 일으키는 게 꽤나 흥미로웠다.
아라리오 뮤지엄은 여전히 흥미로운 미술관이었다.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던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곳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