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지역의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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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내내 푸른 곶자왈, 특별한 숲 곶자왈은 화산섬 제주의 흔적이다. 숲 안에 진동하는 생명의 기운을 품고 별 모양의 하얀 꽃, 백서향이 피었다. 2월 꽃나들이 주인공 백서향!
2월 딱 이맘때, 제주 곶자왈에 가면 어디선가 은은한 향내가 나는 것을 맡을 수 있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백화점 1층의 저돌적으로 진한 향수와는 차원이 다른 자연에서 오는 향기가 이렇듯 달콤하고 청량할까.
곶자왈 속 향기
“백서향 꽃 나들이”
백서향이 그 은은한 향기의 주인공이다. 백서향은 우리나라 남부와 일본에서 자라는 향기로운 상록수다. 내가 그동안 만난 것은 곶자왈에서 만난 백서향으로 2017년 제주백서향이 신종으로 등록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제주백서향이지만 15년 전부터 불렀던 백서향이라는 이름이 익숙하니 백서향 여행이라는 마음으로 곶자왈 안으로 들어가 본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라 하지만 나에게는 겨울을 배웅하는 꽃으로 여겨진다. 1월부터 꽃봉오리를 맺었어도 가는 겨울이 아쉬운지 한 달여를 기다려야 겨우 꽃잎을 여는 백서향이다. 사실 꽃잎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꽃받침이다. 제주의 특별한 숲, 곶자왈에서 백서향이 꽃을 피우는 시기는 2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다. 개화 기간이 3주 이상 되어 이때는 향기가 온 숲을 덮은 듯하다.
제주 백서향의
매력과 의미
흰 꽃잎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곶자왈을 수놓는 백서향은 1m 높이의 상록관목으로, 꽃통이 길쭉한 깔때기 모양이 특징이다. '향기가 천 리를 간다'라는 별명처럼 100m 밖에서도 진한 향기를 느낄 수 있는데 이는 겨울철에 얼마 없는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나름의 생존전략으로 보인다. 용암 지대에 형성된 제주 곶자왈은 백서향이 자라기 최적의 환경이다.
청수곶자왈
내가 백서향 군락을 주로 만난 것은 청수곶자왈이다. 하지만 마을에서 관리하면서부터 입구조차 찾을 수 없고 예약한 사람만 또는 특별한 시즌에만 운영하는 듯해 들어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까. 저지곶자왈, 곶자왈도립공원, 서광곶자왈, 무릉곶자왈 등 대부분의 곶자왈 지역에는 백서향이 자란다. 개체 수는 많지 않더라도 드문드문 핀 곶자왈의 향기는 겨울 추위를 이겨낼 정도로 향기롭다.
무릉곶자왈
곶자왈도립공원
올해 개화 시작은 2월 10일경쯤 예상된다. 절정기는 2월 중순 이후부터 3월까지다. 딱 백서향 꽃놀이를 즐기기 좋은 시즌이 다가온 것이다. 향기가 온 숲을 가득 채울 만큼 진하고 좋은데 특히 향기가 특히 좋을 때가 있다. 오전 9시부터 11시가 가장 향기로운데 숲에서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발산하는 시간과 비슷하다. 안개비가 온 날에는 향기가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고 숲 안으로 머금어 들어 향기가 무겁고 농도가 짙어진 느낌이다. 백서향은 오후가 돼서야 꽃잎을 활짝 연다. 하얀색 별 모양의 꽃이 신부의 부케처럼 모여서 피어 수없이 많은 꽃다발을 받은 듯 설렌다.
제주의 특별함
제주백서향
백서향의 학명은 Daphne kiusiana Miq. 프리드리히 안톤 빌헬름 미쿨(Friedrich Anton Wilhelm Miquel)이 큐슈에서 채집된 표본을 분석하여 학계에 처음 보고했다. 미쿨이 명명자인 식물은 참회나무 Euonymus oxyphyllus Miq. , 모시대 Adenophora remotiflora (Siebold & Zucc.) Miq.가 있다. 2017년에 보고된 제주백서향은 Daphne jejudoensis M. Kim이다.
두메닥나무
서향
제주백서향은 백서향보다 꽃이 더 많이 피고 잎도 조금 다르게 생겼다. 제주도 곶자왈 지역에만 서식하는 특산식물이다. 진한 향기를 풍기는 팥꽃나무과 식물들 즉 백서향의 친구들이 있다. 두메닥나무, 백서향, 서향, 제주백서향이다.
신화 속 다프네,
백서향과 만남
백서향의 학명 'Daphne'는 그리스 신화의 여신 이름에서 왔다. 아폴론이 에로스의 활 솜씨를 놀리자 사랑의 화살인 금화살을 쏘아 아폴론이 다프네를 보고 사랑에 빠지도록 했다. 하지만 다프네는 에로스가 쏜 증오의 화살을 맞았기 때문에 아폴론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달아났다. 아폴론은 숲을 헤치며 다프네를 끝까지 뒤쫓아가 막 안으려 할 때, 다프네는 아버지 페네이오스에게 자기를 구해 달라고 소리쳤고 페네이오스는 다프네의 몸을 월계수로 변하게 했다. 실제 월계수(Laurus nobilis)와 서향(Daphne odora)은 다른 종이다.
곶자왈 안으로 들어가니 숲이 깊어지고 어두컴컴해진다. 맑은 날에는 그나마 나은데 비가 오거나 안개가 낀 날에는 숲은 신비롭다 못해 숲에 갇힌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몇 년 전에 백서향 숲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개인적으로 백서향을 너무 좋아해서 제주도 여행 3일 내내 백서향을 찍으러 갔다. 그날은 비가 간간이 오더니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비가 오기에 안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부리나케 곶자왈 안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서 머문 시간이 거의 3시간 가까이 되었다.
내내 아무도 없었고 혼자 그 숲에 있었다. 그런데 그때 사람의 숲을 밟는 발소리가 들렸다. 꽃향기에 취해, 백서향의 잔잔한 아름다움에 몰입되어 있을 때는 몰랐는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타난 사람은 나처럼 꽃을 좋아하는 지인이었다. 곶자왈은 원시림이어서 방향 감각을 잃기 쉽고 으슥하고 가끔은 핸드폰도 잘 안 터진다. 혼자 숲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다행히 아는 이였기에 만난 김에 명리동식당에서 돼지고기와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2월에 제주 곶자왈에서 만난 매력적인 백서향, 2월에 제주도에 가면 꼭 가 볼 자연 여행지다. 겨우내 푸른 곶자왈의 싱그러움 속, 선물처럼 등장하는 백서향을 만나면 향기를 맡아보고 그 청초한 아름다움을 충분히 감상해보자. 백서향은 제주 2월 여행에 곶자왈에 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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