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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은 Galle로 표기하는데, '갈레'라고 칭하기도 하고, '골'이라고도 부른다. 스리랑카섬의 남부 해안에 위치한 '갈'은 16세기 포르투갈인이 건설한 항구도시인데, 17세기 네덜란드인으로 그 주인이 바뀌었고, 1802년 아미앵 조약으로 영국이 네덜란드로부터 실론(현. 스리랑카) 점령을 승인받았다.
스리랑카 남서부 해안의 갈은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에 이르는 시기를 아우르는 흔적으로, 1988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역사적인 도시이다. 때묻은 성벽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1505년에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처음 이곳에 정착했다고 전한다. 현재 스리랑카의 수도인 콜롬보를 건설하기 2년 전이다. 세계의 모든 문명은 유럽인 위주로 돌아가지만, 사실상 이곳은 포르투갈인 이전부터 무역항이었다고 한다. "갈 옛 시가지와 요새"는 유럽인이 조성한 유적이지만, 이곳은 본래부터 번성했다. 아래 세계지도를 업로드해 지정학적 위치를 살펴보자.
아래 세계지도를 보면, 인도양인 북회귀선 위에 빨간 표식이 스리랑카섬의 '갈'이다. 왼쪽은 아라비아해이고 오른쪽은 벵골만이다. 1502년 포르투갈인이 상륙하기 이전에 페르시아, 아랍권, 그리스, 로마, 말레이반도, 인도, 중국 등과 교류가 있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현지인들의 편한 얼굴 표정을 보면, 아둥바둥 사는 우리들이 정말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저 아이들이 세상에 대해 잘 모르면서 평생을 살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는 이벤트 장소로 사용되는 Hall of Galle 건조물이다. 포르투갈이 처음 이곳에 발을 디딘 1502년, 스리랑카는 싱할라 계통의 파라크라마바후 8세(1484~1518)이 북부의 타밀족 지역을 제외한 전 스리랑카섬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곧바로 교역 관계로 발전했다. 하지만 조만간 가톨릭 예수회를 중심으로 지배자가 되어 갔다.
아래의 건축물은 해양박물관이다. 1671년부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창고로 사용했던 건물을 1948년 스리랑카가 독립하면서 방치되었다가, 이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1992년에 개관했다. 갈(Galle)의 역사는 16세기초 포르투갈에서 시작하여, 이후 네덜란드인이 들어왔고, 더 이후 영국에 지배당했다가, 스리랑카인에게 돌아온 것이 1948년 독립한 이후이다. 그래서 이것저것이 혼합되어 있다.
해안가의 성벽 앞으로 유럽식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다.
아래 건축물은 TAPHOUSE라는 명칭의 레스토랑이다. 네덜란드인 지배기에 지어진 건물로, 당시에는 병원 지구였으나 현재는 레스토랑과 쇼핑센터가 들어서 있다.
탭하우스 레스토랑 앞쪽의 광경으로, 18세기에 네덜란드 병원이 자리했던 곳이다.
해안가 갈 요새에 자리한 등대이다. 항해자들을 위해 요새의 성벽에 설치한 랜턴(lantern)을 대체한 스키랑카 최초의 등대라고 한다. 왠지 높은 탑에 갇힌 라푼쪨이 생각나기도 하고, 청동탑에 갇혀 있던 다나에에게 황금비로 변해 접근한 제우스가 연상되기도 했다. 황금비가 되어 다나에와 관계하여 낳은 자식이 영웅 페르세우스이다.
과거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곳에서, 현재의 실생활이 겹쳐진다.
유럽인들은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세우고, 바닷가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요새를 지었다.
그 옆의 모래사장에서 오늘날 스리랑카인들이 휴식을 취한다. 가족 나들이다.
갈 요새에 웅장하게 세워져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Cathedral of St. Mary, Queen of the Holy Rosary)이다. 로마 가톨릭 교구 아래 예수회에서 지은 성당이다.
갈 요새에 있는 네덜란드 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이다. 가톨릭 성당은 포르투갈 예수회에서 세운 것이고,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종교개혁 이후의 신교이다.
갈 요새에 있는 올세인츠 성공회 교회(All Saints Anglican Church)인데, 영국 성공회 건물이다. 이곳은 누가 지배했느냐에 따라서, 포르투갈의 성당과 네덜란드의 개혁교회와 영국의 성공회가 갈 요새(Galle Fort)의 시가지 안에 공존한다. 종교는 역사이고 문화이고 국가이다. 지배자의 수단이기도 하다.
하얀 교복을 입은 스리랑카 어린이들이 아름답다. 저렇게 앉으면 흰 옷이 더러워질텐데 굳이 흰색으로 교복을 맞춰입은 모습이 오히려 대댠해 보인다. 아이들이 뛰어놀며 얼마나 더럽히겠는가. 엄마들은 매일매일 옷을 빨아줘야 하지 않을까^^
스리랑카는 불교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이슬람교도가 공존하기도 한다.
현지 주민들이 음식을 싸가지고 와서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한국의 돗자리 풍경과 다를 바 없다.
이곳에서 전문적으로 점프하여 뛰어내리는 점퍼들을 광고하고 있다.
야자수를 처음 마시면 약간 미식거리면서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는데, 오히려 갈증에 더 좋다. 나는 야자수 음료를 좋아한다. 계속 마시면 그 매력에 푹 빠진다.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한 개에 5,000원이 넘어가는 가격이지만, 중남미나 스리랑카는 500원~1000원이면 된다.
해안가 주변으로 요새 성벽이 둘러쳐져 있고, 그 안으로 아래사진과 같이 주거지를 포함한 생활 구역이 조성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지만, 시가지 내에는 각종 관광 상품과 상업 시설들이 그득하다.
갈 옛 시가지 안에 위치한 수다르말라야 불교 사원(Sudharmalaya Temple)이다. 옆 건물이 네덜란드 개혁교회이다. 이곳은 모든 종교의 집산지이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혼합된 melting pot과 같은 곳이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가 어우러지면 오히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종교에 의한 탄압이 적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가 이번에는 요새의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해안가를 둘레로 하여 달의 보루(Moon Bastion), 해의 보루(Sun Bastion), 별의 보루(Star Bastion)이 이어져 있다.
아래는 달의 보루(Moon Bastion)의 갤러리이다.
갈 요새의 도서관인데, 1832년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스리랑카 최초의 공립도서관으로 1832년에 발행한 스리랑카 최초의 신문인 콜롬보 저널 초판이 보관되어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영국군이 독서하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수백년이 지난 장소를 돌아다니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경험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생명이 정말 유한하구나 하면서 한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