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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스페인어 썼는데 이젠 영어를 써야하네?
쿠바섬에 살던 타이노족을 전멸 시키고
쿠바섬 인구의 절반 가까이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 노예로 만든 주인공, 스페인이 쿠바섬을 떠났습니다.
흑인 노예들은 스페인이 점령하는 동안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죠. 그리고 결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쿠바에도 새로운 바람이 찾아왔습니다.
다만, 그 바람을 일으킨 건 그동안 독립을 원했던 쿠바 사람들이 아닌 다른 대륙의 사람들이었죠.
그들에겐 새로운 희망이었다.
쿠바 사람들은 정말 좋았을겁니다.
그동안 엄청난 박해와 노동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꿈에 그리던 자유를 얻었으니까요.
하지만,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I 쿠바의 독립 운동의 아이콘 안토니오 마세오 동상 안토니오 마세오는 19세기 쿠바 독립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미국은 파리 평화 조약 등 여러 과정에서 쿠바 독립군과 지도자들을 배제했습니다.
쿠바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언권이 제한되었습니다. 쿠바 사람들은 스페인에서 미국으로만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고 맙니다.
I 평화로운 카리브해 미국도 이 바다를 건너 왔다.
스페인이 떠난 후, 쿠바는 1898년부터 미국의 군사 점령 하에 놓였습니다.
오랜 기간, 스페인 식민지에서 벗어난 쿠바의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죠.
종전 후 3년 동안 쿠바에서는 미국 군대의 군정이 실시되었습니다.
쿠바 내부의 정치적 문제는 계속되었고, 양질의 토지, 설탕 산업, 교통수단 등 쿠바 경제의 중추적 기능을 모두 미국 자본이 장악하게 됩니다.
쿠바인들은 독립을 기대했으나, 미국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되어 큰 실망을 했습니다.
I 아바나 대극장 아바나 대극장 2층에는 설탕 산업이 번창했을 당시에 사용했던 카지노를 볼 수 있다.
특히, 설탕 가격이 계속 상승하여, 미국 자본은 설탕 산업을 장악하려고 난리 부르스를 췄을겁니다. 1920년대에는 쿠바 설탕의 80% 이상이 미국으로 수출될 정도로 쿠바의 설탕은 미국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스페인 떠나니 미국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지요.
다만, 노예가 아닌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노예였던 사람들은 선택권이 없었겠지요.
설탕 산업의 이익은 소수의 지주와 미국 기업에 집중되었고, 대다수 쿠바 국민들은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I 수 많은 올드카가 서있는 아바나 대극장 앞 70년 전엔 이곳에 카지노를 가기 위한 미국인들의 차로 넘쳐났을 것이다.
미국이 쿠바를 장악했을 때, 수도인 아바나는 ‘카리브해의 라스베가스’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독립 후, 크게 나아지지 않은 삶을 사는 쿠바 국민과는 달리, 미국인에게 쿠바는 천국이었습니다.
1950년대에 연간 약 30만 명의 미국인이 쿠바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일단 미국인들에게 쿠바는 비행기로 90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금주법이 시행될 때, 쿠바는 애주가들의 성지였습니다. 비행기 타고 와서 그동안 미국에서 못 마신 술을 엄청 퍼부었겠지요. 게다가 쿠바는 술도 맛있었습니다. 모히토, 다이키리 같은 쿠바 칵테일이 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I 76년의 역사를 간직한 쿠바 내셔널 호텔 1930년에 지어진 이 호텔은 쿠바 국가의 기념비적인 호텔로 처칠이 머문 것으로 유명하나, 카지노로 더 유명했다.
당시, 아바나에는 약 20개의 대규모 카지노가 있었다고 합니다.
마피아가 운영하는 카지노도 있었다고 하네요. 특히 영국의 수상 처칠이 머물고 가서 유명한 내셔널 호텔도 카지노로 유명한 명소라고 합니다. 지금도 쿠바의 내셔널 호텔은 유명인들이 투숙한다고 합니다.
많은 미국 연예인들이 아바나에서 공연했고, 할리우드 스타들도 자주 방문했습니다.
미국이 쿠바를 장악한 후에 쿠바는 미국인들의 놀이터가 됐습니다.
I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바라데로 아바나 근처에 있는 바라데로는 1950년 대에도 유명한 휴양지였다.
유흥을 즐기는 미국인들과는 대조되게 쿠바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관광업 일자리는 창출됐으나, 모든 이익은 소수에게만 돌아갔죠. 상대적 빈부격차는 스페인 때처럼, 쿠바인들에게 분노를 심게 됩니다.
근데, 그토록 독립을 원했던 쿠바의 정치인들은 어떻게 된걸까요?
쿠바가 미국의 놀이터가 된 근본적인 이유
I 옛 국회의사당 건물 1929년에 완성된 건물로 1959년 쿠바 혁명이 끝나기 전까지 정부 소재지였다.
경제적인 부분도 크지만,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933년 쿠데타를 얘기할 수 있는데요.
집권하고 있던 마차도 대통령에 대해 쿠바 국민들은 불만이 엄청 컸습니다.
당시 쿠바는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불평등에 직면한 상태였습니다. 미국에 설탕 수출에 의존했던 쿠바에게 대공황은 쿠바 경제를 극심하게 타격했고, 빈곤과 실업은 만연했습니다. 무엇보다 마차도 대통령의 독재 정권은 부패와 탄압으로 국민들의 불만은 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결국, 쿠바 군인들이 마차도 대통령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반란군은 쿠바 전역에서 빠르게 지지를 얻었고, 7일 만에 마차도 대통령은 쿠바를 탈출했습니다.
1933년 쿠데타는 쿠바 역사상 가장 빠르게 일어난 쿠데타라고 합니다.
당시 쿠바의 인구는 약 400만 명이었지만, 쿠데타에 참여한 군인들은 약 5,000명으로 가성비? 라고 표현하기엔 좀 그렇지만 인구 대비 엄청난 효율로 쿠데타에 성공하게 됩니다.
I 옛 국회의사당 건물2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건축한 사람이 지어 미국 국회의사당의 축소판이라 불리며 건물 이름도 따라 지었다.
쿠데타가 성공적이었나?
하지만 정말 어이없게도 쿠데타를 일으키고 성공까지 했는데 성공한 군인들이 대통령을 누구로 할지 합의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리더 없는 쿠데타였던 것이지요. 이것도 신기합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선택한 방법은 라디오 방송국을 장악하고
라디오를 통해 쿠바 국민들에게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해 선거를 치를 것“
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쿠바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새로운 지도자를 뽑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했으나
다음 날 아침, 이미 선거 결과가 발표되었고, 새로운 대통령으로 마르틴이 선출되었다고 알렸습니다.
?????
네 맞습니다.
쿠바 국민들이 선거 과정을 전혀 목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선거가 언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라디오 방송은 단순히 선거 결과만을 알렸을 뿐이었습니다.
쿠바 국민들은 당혹감과 분노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선거가 진행되었는지, 누가 투표했는지, 투표 결과가 어떻게 집계되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선거가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조작아닌가요 근데? 하지만 군인들은 선거 결과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쿠바 정치의 불안정성과 부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로 여겨진다고 하네요.
I 파도가 거세게 치는 말레콘 거친 바다로부터 아바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미국이 1,900년대 초에 약 7km에 달하는 방파제를 세웠다.
이 시기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바티스타 대통령입니다.
WWE 바티스타 아닙니다. 바티스타는 1934년 9월에 쿠바의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
다양한 사회 및 경제적 개혁을 시도했으며, 이는 1940년에 다시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바티스타의 초기 정책들로 쿠바 경제는 성장했고, 사회적 불평등은 다소 완화된 듯,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바티스타는 점차 독재적인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I 파도가 거세게 치는 말레콘2
바티스타 대통령은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언론 자유를 제한했습니다.
또한, 그는 부패와 횡포는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바티스타의 경제 정책은 외국 투자 유치와 함께 국내 경제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바티스타의 지배 하에 쿠바는 미국 기업들에게 많은 경제적 특권을 부여하는 형태로 외국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쿠바가 미국의 화려한 놀이터로 만든 장본인입니다.
1940년 선거도 부정 선거라는 의혹을 받았는데,
1952년 3월 바티스타는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한 번 쿠바의 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정말 권력에 눈이 먼 사람입니다.
바티스타는 자신의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군대와 경찰의 탄압을 강화했습니다. 언론을 통제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압했습니다. 이로 인해 쿠바의 경제는 침체됐고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됐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탄압과 폭력으로 인해 고통을 겪었습니다.
I 바라데로에서 보는 카리브해
평온한 카리브해에 위치한 쿠바는 왜이리 살기 힘든 곳이었을까요.
마치 주기적으로 오는 허리케인처럼 쿠바섬은 여러 방면으로 쑥대밭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처참한 시기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쿠바에 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인물들이죠.
누군가는 독재자로, 누군가는 롤모델로
쿠바의 역사를 바꾼 그들의 이야기를 다음 편에 알아보려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