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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행리단길'
화성행궁 주변에서 만나는 전통과 젊음의 즐거운 만남!
수원에서 현재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을 꼽으라면? 바로 '행리단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서울의 '경리단길'처럼 맛집과 카페가 몰려 있는 것을 가리키는 '~단길'과 수원의 화성행궁이 있는 '행궁동'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다. 이름대로 이 거리에는 여느 번화가 못지않게 다양한 볼 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수원을 대표하는 문화사적인 수원화성행궁에서 이름을 따와 지어진 행정명인 행궁동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 성곽의 많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팔달문·화서문·창룡문 등이 행궁동에 있어 조상들이 남긴 지혜를 눈으로 직접 보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와 더불어 팔달문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남문 상권의 일부분이 행궁동에 속해있다.
수원화성행궁은 임금님 행차 시 거처하던 임시 궁궐이다. 1789년에 정조는 재위 13년 만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에 옮겨 모시고, 이를 보호하고자 수원을 건설하였다. 이후 1800년(정조 24년) 1월까지, 12년 동안 13차례에 걸쳐서 수원에 행차했으며, 그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다고 한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는 진찬연을 여는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화성행궁은 총 576칸이나 되는 궁궐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웅장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건축양식이 일품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여러 용도로 사용되면서 그 아름다움은 퇴색하기 이른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행궁의 모습은 화성 축성 200주년을 맞아 1996년부터 시작한 복원 사업 덕분이다. 2003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고, 현재는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정조의 효심이 근간이 되어 진행된 화성 조성 사업은 당파 정치 근절과 왕도정치의 강력한 실현을 담은 것이기도 했다. 그와 더불어 남쪽의 국방 요새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었다. 정약용이 설계를 맡았던 이 건축물은 1794년(정조 18년)에 공사를 시작했고, 2년 뒤에 완공되었다.
수원화성에는 거중기와 활차 같은 신기재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축성술을 집약한 독창적인 축성 방법이 남아 있어 18세기 과학·건축·예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방어 기능을 갖춘 동시에 네 개의 성문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어졌지만,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더해져 더욱 돋보였던 듯하다. 또한, 건축 설계와 건설 과정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게 남아 있어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적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화성행궁 지역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젊은 세대에게 화제가 되었던 번화가들이 그러했듯, 이곳 또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 비슷한 사정이 있다. 개발제한지역에 남아있던 노후화된 주택과 한옥들은 청년 사장들에게 좋은 사업 장소가 되었고, 하나둘씩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행리단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거리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지정된 구역이 없다. 대체적으로 화서공원에서부터 수원화성 화홍문에 이르는 총 612미터 거리를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행리단길로 여겨지는 곳은 행궁동뿐만 아니라 화서문로와 신풍로가 겹치는 장안동 일대까지 포함하고 있다.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이 있는 곳 주변이라면 행리단길로 인정되는 분위기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행리단길에서는 서울의 북촌·서촌뿐만 아니라 경주의 황리단길과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이곳에는 화성이 자리하고 있어 또 다른 색다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담벼락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 그리고 담벼락 때문에 생긴 언덕에 앉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일부러 연출하려 해도 쉽지 않을 것 같은 이 독특한 분위기가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새삼 따라 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화성이나 행궁에 대한 내용은 역사 시간에 배운 내용으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행리단길에 대한 소식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신선한 정보였다. 그래서 주말에 시간을 내어 수원으로 향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 명소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이었다. 그 유명하다는 카페나 편집숍을 가지 않더라도, 이미 젊은 세대에게 대세로 여겨지는 번화가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행리단길에서 즐길 거리는 생각보다 더 다양했다.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카페에서는 장안문의 풍경을 보며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 밖에도 노후된 주택 및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음식점이나 카페에서는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하는 이곳 특유의 감성이 녹아있어 특별함이 느껴졌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꼭 들러야 할 장소로 추천받은 곳들은 주로 다양한 제품을 모아놓은 편집숍이었다. 하지만 이미 성수동과 을지로 등에서 여러 편집숍을 방문한 경험이 있어, 행리단길의 편집숍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둘러보니 이곳의 편집숍들도 다른 지역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어 놀라웠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중심이었던 다른 지역과 달리, 행리단길에서는 ‘전통’을 테마로 한 아이템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미국 빈티지 소품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에 있는 서점 또한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옥에서 운영되는 '경기서적'은 다양한 책과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해 흥미로웠다. 마치 서점이 아니라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을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을 한 권 사서 툇마루에 앉아 읽는 경험은 이곳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서점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구비된 책들과 굿즈들이 독특하고 매력적이어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끌렸다.
경기서적 건너편 건물 이층에 있는 '브로콜리 숲' 또한 독특한 개성을 담은 독립 서점이었다. 경기서적보다 더 작은 공간이었지만 이곳에서 선정되어 판매되고 있는 서적들 모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간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이곳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만 같았다. 작지만 숨은 보석 같은, 그런 공간이었다.
수원의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이 지역은 개발이 느리게 진행되는 곳이라 그런지, 과거의 흔적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거리를 걷다 우연히 마주친 '나혜석 생가터'나 '수원 문학인의 집'에서 지역의 역사적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요소들이 모여 거리의 분위기를 더욱 특별하고 색다르게 만들고 있었다.
행리단길 탐방의 마지막은 최근 방영되어 큰 화제를 모은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촬영지로 유명한 화홍문을 방문하며 마무리되었다. 드라마를 정확히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이 방문객에게 꼭 가봐야 할 코스라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 방문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곳을 찾아보니, 왜 사람들이 이 풍경을 극찬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화홍문의 풍경은 드라마 촬영지로 선정될 만큼 아름다웠다. 낮에는 고즈넉한 한옥의 우아한 매력을, 밤에는 화려한 조명과 어우러진 환상적인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화홍문 옆에 위치한 용연 또한 고요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눈길을 끌었다. 수원에서 이런 멋진 풍경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그래서 앞으로 자주 이곳을 찾아오리라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