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 여행기 작성
새 여행기 작성

일 년 중 절반만 개방되는 섬이 있다?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 '시밀란섬'의 청정한 자연 속으로!
푸껫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결정한 우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서 가장 먼저 알게 된 사실은 푸껫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 오래 관광지로 유명세를 끼쳤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즐길 거리가 꽤나 다양했다. 무엇을 좋아하든 간에 이곳에서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푸껫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각자 성향에 따라 서핑,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 등 해양 관련 액티비티를 즐기거나, 푸껫 주변에 있는 섬을 다니며 천혜의 자연을 즐기고 있었다. 자연을 벗 삼아 휴양을 즐기는 것도 인기였다. 예상보다 더 다채로운 즐길 거리에 조금 당황했지만, 늘 그렇듯 해결책을 찾았다. 우리가 결정한 것은 '섬 투어'였다.
투어를 알아보며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푸껫 주변의 수많은 섬들 중 대표적인 관광지는 '시밀란섬', '피피섬', 그리고 '수린섬'이었다. 피피섬은 여러 영화에 등장한 덕분에 익숙하게 느껴졌지만, 시밀란섬과 수린섬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어 한층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우리에겐 낯설었지만 이미 많은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들이었다.
이 두 섬은 자연 그대로의 바다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필수 코스로 꼽힌다고 한다. 특히 시밀란섬은 세계 10대 다이빙 포인트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운이 좋으면 바다거북이나 만타가오리, 고래상어 같은 대형 해양 생물도 만날 수 있다고 해 기대감을 더했다.
시밀란섬과 수린섬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10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만 개방된다. 5월부터는 우기로 접어들어 비바람과 높은 파도로 인해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기후적 특성 덕분에 일 년 중 절반가량은 자연스럽게 섬의 휴식기가 주어지고, 그만큼 청정한 환경이 유지되는 듯했다. 게다가 하루 방문 인원이 제한될 만큼 국가에서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세 섬 모두 둘러보고 싶었지만,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 우리는 피피섬과 시밀란섬을 선택했다. 수린섬을 제외한 이유는 시밀란섬이 좀 더 독특한 지형으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수린섬에 대한 후기를 보니 한적하고 청정한 자연이 매력이라는 평이 많아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많은 사람들이 찾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시밀란섬으로 향했다.
시밀란섬은 어떤 곳?
섬의 이름인 '시밀란'은 '아홉'을 뜻하는 말레이어(Malay)라고 한다. 태국에 속해 있지만, 이름에서 말레이시아의 문화적 영향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그 이름대로 이곳에는 9개 섬이 있다. 코 바 응우(Ko Ba Ngu), 코 시밀란(Ko Similian), 코 파 유(Ko Pa Yu), 코 미앙(Ko Miang), 코 파 얀(Ko Pa Yan), 코 파 양(Ko Pa Yang), 코 후 용(Ko Hu Yong)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근에는 코 본(Ko Bon), 코 타차이(Ko Tachai) 섬이 포함되어 시밀란 제도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투어를 한다고 해서 이 모든 섬을 방문할 수는 없었다. 코 후 용, 코 파 양, 코 파 얀 이 세 섬은 거북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었다. 심지어 코 타차이는 환경 오염 우려로 인해 영구 폐쇄되어 아예 방문이 금지되어 있었다. 섬의 자연을 온전히 누리는 것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지만, 이런 제한 때문에 오랫동안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재밌게도, 사람들은 시밀란 제도에 있는 섬들을 보통 숫자로 불린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투어에서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방식인 듯하다. 국립공원의 본부이자 아홉 개 섬 중 큰 편에 속하는 코 미앙은 '4번 섬'으로, 시밀란 제도의 이름을 딴 코 시밀란은 '8번 섬'으로 불린다. 일일투어로는 보통 4부터 9번 섬 주변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구성되며, 카오락(Khao Lak) 남쪽의 땁라무 항구(Tab Lamu Port)에서 출발하는 배를 이용해 진행된다.
시밀란섬의 투명한 자연 속으로
우리가 투어에 참여했던 때는 건기에서 우기로 넘어가려는 4월 말이었다. '이 정도면 날씨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내심 기대했지만, 기대와 달리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흐려있었다. 그리고 배를 타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마주한 폭우는 땅에서 느낀 것과 퍽 달랐다. 먹구름이 양동이째로 물을 퍼붓는 것 같은 모습에 설렘보다는 걱정부터 앞섰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제대로 물속 탐험을 즐길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였다. 첫 번째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는 포인트에 다다르자, 거짓말처럼 비가 멎고 하늘이 푸른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바다가 걱정 말라는 듯, 안심시켜 주는 기분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새파란 바닷물이 저절로 나를 이끄는 듯했다.
물속에서 마주할 다양한 물고기들도 기대가 되었지만, 그보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 자체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다채로운 푸른색을 품고 있는 바다의 모습에 감격한 순간이 지금도 기억에 남을 만큼 생생하다.
수십 명의 사람이 참여하는 투어에서는 시간은 곧 금이었다. 망설일 틈도 없이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독특한 모양의 산호초와 알록달록한 색의 열대어들이 반기듯이 우리의 주의를 맴돌았다. 바다의 풍경을 바라봤을 때처럼, 벅찬 감동이 가슴 가득히 차올랐다. 이래서 사람들이 여기를 오는구나, 싶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리브어보드(Liveaboard)'라는 여행 방식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그저 신기하다고만 여겼다. 하지만 직접 바다를 마주하니, 며칠씩 배 위에 머물며 다이빙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단박에 이해가 갔다. 수면 아래 펼쳐진 세계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뱃멀미와 깊은 수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배 위의 여행은 쉽지 않은 일일 터였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삶을 이어가며 그 풍경을 매일 마주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부러움이 일었다.
바다와 바닷속 풍경도 아름답지만, 섬 자체의 모습 또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들른 4번 섬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섬이 가지고 있는 숲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초록빛이 가득한 싱그러운 분위기가 또 다른 힐링을 선사했다.
숲속에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도마뱀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존재였다. 사람을 경계하던 도마뱀은 보일 때마다 매번 도망치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따라잡힐 만큼 느리기 그지없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과 달리 느린 모습이 귀여웠고,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8번 섬에 다다랐을 때에도 섬의 절경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시밀란 제도의 이름과 같은 이 섬의 북서쪽에는 '도널드 덕 베이'라는 명소가 있다. 이름 그대로 만화 캐릭터와 닮은 독특한 바위가 자리 잡아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바위 언덕에 올라 섬의 전경을 감상하는 것이 투어의 하이라이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투어 초반에 내린 폭우로 인해 바위가 너무 미끄러워져 언덕에 오르는 것이 금지되었다. 섬에 도착하기 전에 배 위에서 가이드가 알려준 슬픈 소식에 다들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덕분에 섬을 더 여유롭게 산책하고 해변가에 앉아 바다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바위 틈 사이로 게와 갯가재가 움직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새끼손톱보다 더 작은 물고기를 발견했을 때에는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한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언덕에서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 그리 아쉽게 느껴지진 않았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며 섬 곳곳을 여행하는 일은 꽤나 고된 여정이었다. 게다가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아 아쉬움도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마주한 자연은 그 어떤 여행지보다 청정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왜 사람들이 이곳을 찬양하는지 알 수 있는 풍경이었다.
여행을 마친 지금도 눈을 감으면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던 물고기들과 형형색색의 산호초가 아른거린다. 그 풍경이 자꾸만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왜 이제서야 이런 보물 같은 곳을 알게 되었는지, 후회가 들 정도다. 그래서 다음에는 날씨 좋은 건기에 다시 이곳을 찾겠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