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 여행기 작성
새 여행기 작성

세련되고 감각적인 공간으로 가득한 상하이 도심에도 오랜 역사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는 장소가 있는데, 바로 천년고찰 정안사(靜安寺)이다.
정안사는 북적이는 도심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이름 그대로 '평화롭고 고요한' 분위기를 잃지 않고 있는 사찰이다. 마치 도시의 오아시스와 같은 고즈넉한 이 곳은 무려 1,800년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 천년고찰이다. 원래 이름은 중원사(重元寺)였다.
삼국시대 오나라 손권 시절인 247년에 창건되어 상해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로 꼽힌다. 송나라 때 현재 위치로 옮겨졌으며, 19세기 태평천국의 난과 1966년 문화대혁명 때 심각하게 파괴됐다. 특히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플라스틱 공장으로 사용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후 여러 차례 보수와 재건을 거친 끝에 지금의 모습이 됐다.
정안사 지하철역에 내리니 정안사보다 더 먼저 눈에 띈 건 의외로 사찰 맞은 편에 있는 대규모의 애플 매장이다.
중국 인구의 절반 이상은 애플(아이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딜가나 애플 매장은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통창 유리 너머에 수많은 사람들이 제품 구경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어쩌면 정안사 보다 애플 매장 때문에 이곳에 오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안사 주변은 애플을 비롯해 다양한 쇼핑몰과 고층빌딩으로 가득했다. 전혀 닮지 않은 차가운 회색 도시와 황금 지붕의 정안사는 그렇게 기묘한 동거를 하고 있었다. 조용한 산 속에 자리한 산사(山寺)가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사찰 풍경이 낯설고 신기하기만 하다.
정안사 맞은편의 대형 애플매장
도심속 천년고찰, 정안사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문화관광지가 무료이지만, 중국은 어느 곳이건 입장료를 받는다.
특히 명승지마다 등급을 매겨 관리하는데, 가장 중요한 유적지에 붙이는 5A 풍경구의 입장료는 상당히 비싸다.
5A 유적지인 돈황 막고굴의 경우 무려 258원(5만원가량)이나 한다.
5A 풍경구는 아니지만 정안사도 50원(만원가량)의 입장료를 받는다. 중국 물가 기준으로는 비싼 편이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내국인과 외국인의 입장료가 똑같다는 점이다. 또한 입장료를 받는 곳은 상당히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여행하기에 무척 편하다. 중국 여행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정안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중앙 마당에 자리한 거대한 탑이 눈에 띈다.
탑 내부에는 명나라 시절에 만든 7.3톤의 거대한 청동 종이 있다. 탑 앞에 있는 대형 향로에는 수백개의 향이 켜있어 짙은 향 냄새가 사찰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많은 중국인들이 탑 주위를 돌며 기도를 하거나 동전을 던지고 있는데, 향로 틈에 동전을 던져 들어가면 소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요즘 중국은 현금보다는 모바일 페이를 많이 사용해서 어디서 동전이 생기나 궁금했는데, 마당 한켠에 큐알코드를 스캔하면 동전을 뽑을 수 있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역시 거지도 큐알코드로 동냥을 받는다는 중국 답다.
중앙마당에 있는 거대한 탑. 향로 틈으로 동전을 넣어 들어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현금이 사라진 중국에서, 큐알코드로 동전을 뽑을 수 있다
중앙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대웅보전이 있다.
대웅보전 내부에는 3.9m 의 높이와 10톤의 무게를 자랑하는 거대한 옥불상이 있는데, 이는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대웅보전 뒷편으로는 7층 높이의 법당 여러 채가 마치 미로처럼 얽혀있다. 일부분만 개방하고 있는 이 곳은 층마다 복도에 작은 방들이 이어져있다. 아마도 정안사에 머무는 승려들이 꽤 많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대웅보전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옥불상이 있다
대웅보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사찰 곳곳을 거닐고 있는데 붉은 가사를 걸친 티베트 스님이 오더니 나에게 말을 건냈다.
아마도 내가 중국인으로 착각한 듯 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스님은 반가워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고보니 정안사에는 유독 티베트 승려가 많이 보이는데, 정안사가 밀교 종파인 진언종(真言宗)사찰로 사상적으로는 티베트 불교에 가깝기 때문이다. 승려는 외국인이 반가운지, 대뜸 휴대폰을 꺼내 웨이신(중국 모바일 메신저) 친구 추가를 요청했다. 중국에서는 누군가를 만나면 웨이신 친구 추가부터 하는게 일상이지만, 스님과 친구라니! (얼떨결에 친구 추가를 했는데, 상하이에서 돌아온 뒤로도 스님은 가끔씩 메신저로 불교 교리를 보내주고 있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건물들
스님과 헤어지고 다시 사찰 구경에 나섰다.
건물 좁은 틈 사이로 고층 빌딩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이곳이 도심임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정안사에서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곳이 종루 근처에 세워진 황금색 기둥이다.
기둥에는 사자 얼굴이 새겨져있는데, 여기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정안사 근처에 일본 백화점이 있는데 장사가 잘 안됐던 모양이다. 사장은 답답한 마음에 정안사 스님에게 자문을 구하게 된다. 스님은 원래 정안사 근처가 기(氣)가 강한 곳이어서, 그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운 사찰이 정안사라며 황금으로 사자상을 만들라고 얘기했다. 백화점 사장은 그래도 실행했고, 신기하게도 그 뒤부터는 백화점 영업도 잘 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안사의 또 다른 볼거리.
만약 5월초에 정안사에 간다면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3일간 열리는 '템플 페어'도 놓칠 수 없다. 청나라때부터 시작된 축제로, 마을사람들이 사찰에 모여 수공예품과 농수산품을 파는데 그 모습이 꽤 볼만해, 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정안사를 찾는다.
사자가 새겨진 황금기둥
고층빌딩 숲속에 자리한 정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