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지역의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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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의 고아함에 빠져들었다. 작약 꽃밭 가장자리엔 푸르름의 절정을 보여주는 메타세쿼이아가 띠처럼 둘러있다. 작약 꽃밭이 아니더라도 걷기 좋은 길이다
올해는 확실히 꽃의 개화가 늦다. 보통은 합천 황매산 철쭉과 비슷한 시기에 개화하던 작약이 올해는 철쭉이 피고 난 뒤 열흘 이상이 지나서야 흐드러졌다. 친구들과 함께 합천 핫들생태공원에 작약 꽃놀이를 했다.
사실 친구들은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꽃을 좋아하면 왠지 나이가 든 것 같다며 이미 나이가 들었음에도 그것을 거부하는 마음을 꽃을 좋아하느냐 마느랴로 말한다.글쎄, 과연 그럴까? 꽃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꽃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큰 관심이 없는 친구를 데려가려니 이야기가 길어진다.
모란과 작약, 비슷한 듯, 다른 듯
꽃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에게 꽃을 좋아할 계기를 주고 싶었다. 이 여행지가 기억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를 말이 많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모란, 목단, 작약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란, 목단, 작약이 다른듯 비슷한 꽃이야." 모란은 '부귀'와 '영화'의 상징으로 여겨져 예로부터 선비나 백성들이 사랑했던 꽃이다. 한 친구는 민화를 그리기 때문에 모란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민화를 배우기 시작하면 초기에는 대부분 연꽃과 모란을 그린다. 모란과 목단은 같은 식물을 부르는 이름이다.
모란은 나무이고 작약은 여러해살이 풀이다. 풀은 겨울을 난다. 매년 봄이 되어 새싹이 돋아나고 그해 꽃을 피우고 난 뒤 가을에는 시들어버린다. 모란이 장미처럼 끝이 뾰족한 꽃봉오리라면, 작약은 공처럼 둥글다. 모란꽃은 대체로 크고 화려하며, 작약은 풍성하게 겹쳐진 꽃잎이 모란 못지않게 화려하나 풀꽃이어서인지 줄기가 연약한 편이다.작약은 꽃잎이 풍성하게 겹쳐져 있으면서도 정갈한 모양을 하고 있어, 마치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감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약의 꽃말은 '수줍음', ‘부끄러움’이다.
두 꽃은 개화 시기가 다르다. 모란이 4~5월에 피고 작약은 조금 늦게 5월에 핀다. 우리집 옥상에 심어 겨울에는 말라비틀어져 버리는 아이는 작약이었구나. 진딧물이 좋아해서인지 작년까지만 해도 제대로 꽃을 못 피우더니 올해 드디어 꽃을 피워 한창 어여쁘다. 옥상의 작약은 연분홍색이다.
‘햇빛이 잘 드는 들판’ 핫들
대구에서 출발해 합천으로 갔다. 자동차로 1시간 조금 넘는 거리다. 합천 핫들생태공원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에 위치한 생태공원이다. 핫들생태공원의 '핫들'이란 이름은 '햇빛이 잘 드는 들판'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에서 나왔다. 그곳에 가보니 햇볕이 따가웠고 너른 들판이 펼쳐졌다.
핫들생태공원은 합천군 농업기술센터가 직접 관리하는 생태공원으로, 본래 황강마실길 3구간에 위치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곳은 방치된 농경지였으나 지금은 약 6천 평 규모의 작약밭을 중심으로, 황강을 따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와 자연친화적 쉼터, 파크골프장, 자전거도로, 어린이 물놀이장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특히 이 지역은 낙동강 지류인 황강이 인접해 있어 풍부한 수자원과 비옥한 토양을 갖추고 있었다. 꽃밭에만 있으면 그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는데 드론으로 촬영하다 보니 강줄기 옆에 만들어진 작약꽃밭의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5월의 귀부인, 작약 꽃밭
핫들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5월에 피는 작약 꽃밭이 한 몫을 했다. 현재는 10만 송이의 작약이 피어있고 흰색에서 자주색까지 스펙트럼처럼 다양한 색을 보여준다. 봄의 끝자락을 잡기에 충분한 2주간의 화려함이다. 꽃밭 사이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과 쉼터,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꽃 속에 파묻혀 인생 샷을 남기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한참 꽃을 찍고 있는데 몇몇이 지나면서 말한다. “어쩜 이리 고울까” 다른 이가 화답하듯 대답한다. “뭐니뭐니해도 사람꽃이 최고야" 그렇지 꽃밭도 좋긴 하지만 이를 함께 즐기는 이가 있으니 더 꽃이 예뻐보인다. 그들에게 이 봄의 끝자락에 피어난 작약이 얼마나 탐스럽고 고울까? 물론 함께 한 이 또한 귀하고 또 귀할 것이다. 꽃도 예쁘고 사람도 고우니 참 멋진 5월이 아닌가.
꽃밭 가장자리에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이 감싸듯이 자리해 있다. 다채로운 핑크색 속삭임같은 작약 꽃밭과 초록의 싱그러움이 어우러져 더 봄의 마지막 절정이 느껴진다.
작약 꽃밭을 지나면 금계국이 피어있고 초록이 싱그러운 또 다른 싱그러움이 펼쳐진다. 이곳은 황강마실길 3구간으로 핫들생태공원 주변에 흐르는 황강을 따라 산책이나 휴식을 취하기 좋다. 황강변에 위치한 핫들생태공원은 해를 거듭할수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황강마실길을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파크골프 취미활동으로 휴식과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워낙 꽃을 좋아하는 나는 꽃밭 안쪽 길과 바깥쪽 산책로, 포토존을 누비며 다녔다. 한 시간여를 작약과 함께 무도회에 온 귀부인인 것처럼 즐겼다. 실컷 꽃구경을 하고 돌아가는 길, 그동안 꽃을 좋아하지 않았던 친구가 ‘와! 사진으로 찍으니 더 예쁘네’ 하는 말을 한다. 작약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화려함과 고상함이 있는 꽃이다.
도심을 벗어나 꽃과 함께 힐링을 선물하는, 작약꽃 들판에서 특별한 봄날을 누려보길. 끝물이긴 하지만 시기를 달리 심은 것인지 자주색 작약이 절정으로 피어 충분히 꽃놀이 즐길만 하다. 혹시라도 시기를 놓쳤다면 내년에는 5월 20일 경을 맞춰 방문해보길.
핫들생태공원은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입장료는 무료.
위치: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핫들2길 19
개화 시기: 5월 10일 경부터 말까지
개장 시간: 연중무휴, 24시간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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