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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불과 20여년전만해도 치앙마이는 잘 알려진 여행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 중 하나가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치앙마이로 떠난다. 요즘에는 직장에서 퇴사하면 가장 먼저 치앙마이부터 갈 정도라고 한다. 디지털 노마드들 또한 어느 곳보다 치앙마이에 열광한다. 저렴한 공유 오피스와 세련되고 조용한 카페가 곳곳에 있어 노트북 하나만 들고 어디서건 일을 할 수가 있다.
치앙마이에 오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아마 그들의 바램은 같을 것이다. 그저 쉬고 싶다!
누구의 간섭이나 압박도 없이 온전히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 치앙마이는 그런 여행지다.
40일간 태국 북부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첫번째 도시로 고민할 필요 없이 치앙마이로 결정했다. 왠지 치앙마이가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치앙마이는 두번째 여행이다. 첫 여행은 15년 전이었다. 방콕과는 다른 색다른 여행지로 치앙마이가 조금씩 입소문을 타던 때였다. 방콕에서 쉽게 갈 수 있는 점도 장점이지만, 무엇보다 태국 북부의 선선한 날씨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오래된 사원으로 가득한 올드타운, 감각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님만해민. Old&New 가 공존하는 치앙마이의 풍경이 좋았다. 치앙마이를 떠나며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또 치앙마이에 와야겠다' 그리고 다시 나는 치앙마이를 찾게 됐다.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나는 기차를 탔다. 비행기의 12배나 걸리지만 낯선 지역을 기차로 달리는 설레임만큼 낭만적인 일은 없는 것 같다.
방콕에서 매일 5편의 치앙마이행 기차가 다닌다. 이 중 저녁 6시40분 기차가 가장 인기있다. 최신 열차라 내부 시설이 가장 깨끗하다. 그렇다보니 예약경쟁이 치열하다. 나 또한 결국 예약에 실패해 밤 8시 기차표를 구매했다.
방콕에서 치앙마이는 700km 가량 된다. 고속열차라면 2시간반이면 도착할 거리지만 치앙마이행 기차는 느렸다. 그것도 무척이나.
이유없이 정차하기도 하고, 멈춘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천천히 달리기도 했다. 기차에서 내려 걸어가도 이것보다 빠르겠다 싶을 정도로 지루한 구간도 많았다. 그렇다보니 기차는 2시간이나 더 지연돼 다음날 10시에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침대 열차에 누워 느릿느릿 흘러가는 태국 시골 풍경을 보고 있으면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미지의 세계로 불시착해버리는 게 아닐까도 싶었다. 클릭 한번만 해도 지구 반대편 소식이 바로 들려오는 초고속 시대에 이토록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이라니. 낯설지만 싫지 않았다.
치앙마이 기차역에 도착하자 큰 배낭을 멘 여행자들부터 30리터가 넘는 대형 캐리어를 끄는 가족 여행자 등 수많은 여행자들이 쏟아져나왔다. 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반가웠다. '모두들 치앙마이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세요!' 마음속으로 기원한 뒤 툭툭이(태국의 3륜 오토바이)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치앙마이행 기차
조금은 촌스럽지만 낭만적인 기차내부
느리게 흘러가는 풍경
치앙마이역
치앙마이가 유명해지며 숙소도 늘어났다.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부터 세련된 풀빌라까지 다양하다. 특히 한달살기가 유행하며 취사시설을 갖춘 콘도미니엄이 많아졌다.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다 요리를 해먹을수도 있고, 수영장과 헬스장도 있어 가족 여행으로도 좋은 환경이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올드타운이나 님만해민쪽에 숙소를 잡는 편이지만 나는 싼티탐이라는 현지 동네에 위치한 콘도미니엄을 예약했다. 싼티탐은 님만해민에서 20여분 정도 떨어져있지만 저렴하고 깨끗한 숙소들이 많이 있다.
보름을 머물렀다. 애초에 특별한 계획없이 왔던 곳이라, 치앙마이의 일상은 단순했다.
느즈막하게 일어나 전날 사놓은 빵과 과일로 아침을 먹고, 숙소에서 책을 보거나 노트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는 마켓 구경을 다녔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굳이 숙소 밖을 나가지 않았다. 침실 통창으로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나른한 오후를 보내는 것이 좋았다.
그래도 매일 저녁이 되면 숙소 밖을 나왔다. 치앙마이에는 길거리 음식부터 고급 레스토랑까지 맛있는 음식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숙소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야시장에서 파는 갓 구운 새우를 먹기도 하고, 미셀린 맛집에서 태국 북부 음식 세트를 먹기도 했다. 맥주는 늘 빠지지 않았다. 치앙마이의 하루는 더없이 완벽했다.
내가 머문 콘도미니엄
숙소밖 풍경
소박하지만 행복한 아침식사
치앙마이에서는 바쁘게 움직이지 마세요
무료할 정도로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행복함으로 가득했다. 치앙마이까지 와서 쉬기만 하면 아깝지 않냐 싶겠지만 그 자체로 좋았다. 치앙마이는 그런 도시다. 굳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그저 순간 순간 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하다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요즘은 여행 정보가 넘쳐다보니, 그 지역에서 꼭 해야 할 들을 금새 찾을 수 있다. 그렇다보니 내 취향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곳이면 의무감때문에 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여행을 안한 것 같은 찝찝함마저 생긴다.
하지만 치앙마이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물론 치앙마이에도 꼭 가봐야 할 곳은 있다. 하지만 그냥 치앙마이의 시간 자체를 즐겨도 치앙마이에서는 행복하다.
누군가 추천한 맛집이 아니어도 길거리 어딜가나 카우쏘이(커리에 코코너밀크를 넣은 바삭한 에그누들요리로 대표적인 태국 북부 음식)나 캠무(태국 북부식 돼지껍질 튀김 요리)를 파는 맛좋은 현지식당이 넘쳐난다. 노트북을 챙겨 워크 스페이스에 가서 하루쯤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볼 수 도 있다. 주말에는 징짜이 마켓에서 쇼핑 삼매경에 빠져볼 수도 있다.
정해진 일정도 없고, 꼭 해야하는 일도 없다. 그저 순간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내가 태국 북부 여행의 출발지로 치앙마이를 선택한 이유다. 태국 북부에서는 누구의 간섭도, 강요도 없이 온전히 나만의 여행을 즐겨보려고 한다.
그리고 시작이 좋다.
님만해민의 원님만
태국 북부 음식인 카우쏘이
태북북부 요리가 한가득이다
노트북을 하며 하루종일 있을 수 있는 워크스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