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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5층석탑에서 발견된 일괄 유물. 1966년 7월 26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1966년 7월 26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1965년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을 보수하던 중 발견된 유물들로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사리장치 1식과 금제(金製) 판경(板經)은 1층 옥개 상면에서, 동불입상과 청동령(靑銅鈴)은 탑심 초석 사리공에서 발견된 것이며, 탑심 초석에 뚫린 '品' 자형 3개의 사리공 중에서 1개는 이것이 발견된 1965년 12월 이전에 이미 도굴되었다. 이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유물은 금판제(金板製)의 금강경첩(金剛經帖)으로, 이 판경은 순금판 19장에 각기 17행(字徑 0.6cm×0.7cm 내외)의 금강경문을 뚜렷하게 눌러 찍은 것으로서 그 글자 모양으로 보아 이것을 눌러찍기 위한 자모는 활자 형태 또는 정밀하게 조각된 판목(板木)에 의한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사리병은 녹색의 양질 유리로서 장경병(長頸甁)의 양식과 곡선미를 기품 있게 나타낸 작품인데, 연꽃 봉오리 모양의 금제 마개가 덮였고, 앙련화좌(仰蓮華座)를 떠받친 정사각형의 병좌하대(甁座下臺)를 갖추고 있다. 이 사리장치를 안치했던 금제방합(金製方盒)은 네모 지붕형의 뚜껑을 가진 사각형의 합자(盒子)로서 지붕 위에는 반쯤 열린 연꽃 봉오리를 장식했고, 지붕 4위(圍)와 합신 4주(周)에는 보주(寶珠) 또는 화염문(火炎文)을 연상시키는 당초문의 한

텔레라

텔레라

타원형에 납작한 모양을 한 멕시코의 롤빵으로 팜바소의 재료로 즐겨 쓰인다. 타원형으로 납작한 모양을 한 롤빵(bread roll)이다. 멕시코에서 볼리요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종류의 빵 종류 중 하나이다. 샌드위치 빵으로 토르타, 팜바소를 만드는 데 즐겨 쓰인다. 텔레라와 볼리요 텔레라는 흔히 볼리요와 유사한 빵으로 혼동되기 쉬우나, 두 빵은 모양과 질감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먼저 볼리요가 풋볼 모양에 바게트와 유사한 형태를 띠는 것에 비해, 텔레라는 반구에 가까운 평평한 형태이다. 또 볼리요가 겉이 파삭하고 속살이 부드럽고 쫄깃한 것에 비해, 텔레라는 볼리요보다 겉껍질이 훨씬 부드럽다. 또한 겉껍질과 속살의 질감 차이가 없으며, 질감이 약간 스폰지와 같고 푹신하다. 조리법 볼에 이스트, 물, 설탕을 넣어 잘 섞어주고 약 5분간 휴지한다. 여기에 밀가루, 소금을 넣어 약 10분간 반죽해서 부드러운 질감의 반죽을 만들어준다. 반죽에 버터를 넣고 접기를 한다. 반죽을 오일 바른 큰 볼에 넣고 윗부분을 덮어놓은 뒤 따듯한 곳에서 약 1시간 30분간 휴지한다. 반죽을 작은 공모양으로 소분한 후, 각각의 반죽을 둥글납작하게 성형한다. 각각의 반죽 표면에 두개의 칼집을 낸다. 반죽을 뒤집어서 마찬가지로 두개의 칼집을 낸다. 반죽을 오븐 트레이에 담고 표면에 물을 발라준다. 200℃로 예열한 오븐에 넣고 약 15~20분간 황금갈색이 될 때까지 구워준다. 완

쿠로니아 모래톱

쿠로니아 모래톱

리투아니아와 러시아 두 국가에 걸쳐져 있는 모래톱이다. 클라이페다에서 52km이르는 지역은 리투아니아에, 삼비아 반도에 이르는 나머지 46km는 러시아에 속해있다.2000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발트해(Baltic Sea) 연안에 위치한 리투아니아(Lithuania)와 러시아(Russia) 두 국가에 속해 있는 세계유산이다. 쿠로니아 모래톱(Curonian Spit)은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 주(Klaipeda Region)의 네링가(Neringa)와 클라이페다(Klaipeda) 사이의 지역뿐 아니라 러시아 칼리닐그라드 주(Kaliningrad Region)의 제레노그라드스크(Zelenogradsk) 지방까지 뻗쳐 있다.  총 길이 98km에 이르는 긴 모래언덕으로, 너비는 위치에 따라 400m에서 3,800m까지 다양하다. 이 쿠로니아 모래톱을 경계로 리투아니아와 러시아를 모두 접하고 있는 크로니안 석호(Curonian Lagoon)가 발트 해(Baltic Sea)와 분리된다. 리투아니아의 항구 도시 클라페이다와 러시아의 삼비아(Sambia) 반도가 모래톱의 양끝이다. 모래톱의 52km는 리투아니아에 속해있으며 나머지 46km는 러시아에 속해있다.  쿠로니아 모래톱은 선사시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형성 당시 바람과 파도에 의해 모래톱은 생성과 사라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곳에 거주를 시작한 인간들은 모래톱을 보수하고 나무를 다시 심어 그 삶의 터전을 지켜나갔다. 그러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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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마르틴 루터

독일의 종교개혁자이자 신학자. 면벌부 판매에 '95개조 논제'를 발표하여 교황에 맞섰으며 이는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독일어 통일에 공헌하였으며 새로운 교회 형성에 힘써 '루터파 교회'를 성립하였다. 1483년 11월 10일 작센안할트주 아이슬레벤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만스펠트로 이주하여 광부로 일하다가 광산업을 경영, 성공하여 중세 말에 한창 득세하던 시민계급의 한 사람이다. 그는 엄격한 가톨릭신앙의 소유자였고 자식의 교육에도 관심을 가졌다. 마르틴은 1501년 에르푸르트대학교에 입학, 1505년 일반 교양과정을 마치고 법률공부를 시작하였는데, 자신의 삶과 구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무렵 도보여행 중 낙뢰(落雷)를 만났을 때 함께 가던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그 해 7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학업을 중단,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들어갔다. 계율에 따라 수도생활을 하며 1507년 사제(司祭)가 되고, 오컴주의 신학교육을 받아 수도회와 대학에서 중책을 맡게 되었다. 1511년 비텐베르크대학교로 옮겨, 1512년 신학박사가 되고 1513년부터 성서학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는 이때, 하느님은 인간에게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접근하고 은혜를 베풀어 구원하는 신임을 재발견하였다. 이 결과가 당시 교회의 관습이 되어 있던 면벌부(免罰符) 판매에 대한 비판으로 1517년 ‘95개조 논제’가 나왔는데, 이것이 큰 파문을 일으켜 마침내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그는 교황으로부터 파문칙령(破門勅令)을 받았으나 불태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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