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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마리 용의 전설, 황장목 숲길 따라 뽀드득 거리는 눈길, 200년 된 은행나무 지나 보광루, 대웅전에서 바라본 치악산 설경, 산사의 겨울은 고요하고 신비롭다
며칠 눈 소식이 있었다. 지금은 눈이 그친 상태다.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니 도시는 하얀 세상에서 잿빛 잔해를 남기고 녹아내린다. 지난밤에 내린 눈의 흔적이 시커먼 질퍽거림으로 변했다. 강원도 깊은 산자락에 자리한 치악산에 가면 새하얀 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여행지는 산이 목적지가 아니라 치악산이 품은 사찰, 구룡사다.
겨울 숲길을
사뿐사뿐 걷는다
구룡사는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에 있는 천년 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8년(668년)에 설립되었다.
주차장 위쪽에서 구룡사로 들어가는 길 왼쪽에 작은 표지판이 보인다. 수차례 구룡사에 왔지만, 그동안은 스치고 지났던 표지석이다. 황장금표는 조선 시대 왕실의 궁궐을 짓거나 보수하는 데 쓰인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어쩐지 이곳 구룡사 숲길이 남다르더라니. 황장목 숲 우거진 구룡사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구룡교의 가을 모습
다리를 지키는 양옆으로 용의 형상이 보인다. 조형물이 조금 부서지긴 했지만, 그 의미가 중요한 것이니까. 구룡사는 절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용에 관련한 설화가 전한다.
드디어 나타나는 구룡교,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물소리가 들린다. 볕이 좋은 곳인지 드러난 계곡에 얼음과 눈 아래로 물이 흐름이 보인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시간도 그 안에는 희망이 흐른다는 인생의 지혜를 얘기해주는 풍경이다.
아홉 마리 용과
거북이 설화
지금의 구룡사가 있는 자리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사는 큰 연못이 있었다. 용이 살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가까이 가지 못했다. 의상대사가 이곳이 좋은 절터임에 절지의 부처님을 가르침을 전하고자 했다.
절을 짓기 시작하자 용들이 번개를 치고 폭풍우를 일으켜 방해했다. 의상대사는 부적을 연못에 던져 물이 끓어오르게 했다. 아홉 마리의 용 중 여덟 마리는 부리나케 도망치다 계곡을 만들었고 미처 도망치지 못한 한 마리만 구룡사 옆에 있는 용소에 남았다고 한다. 설화의 영향으로 '아홉 용의 절'이라는 뜻의 '구룡사'라고 불리다가 쇠락하던 절을 번창시키기 위해 절 입구를 지키는 거북바위에서 이름을 따와 아홉 구(九)' 자에서 거북이 '구(龜)' 자로 바뀌었다. 지금의 절 이름은 '구룡사(龜龍寺)'다.
다리를 건너고 나서 차가 다니는 길이 아닌 산책로로 접어든다. 황장목 숲길을 제대로 걷기 위함이다. 눈이 꽤 쌓여 있어 미끄럽기는 하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많은 눈에 부러진 소나무도 간간이 눈에 띈다. 가을에 왔을 때는 맑은 계곡물 풍경에 즐거웠는데 그 위에 소복하게 내려앉은 눈은 계곡의 자취를 덮는 이불 같다.
산사의 겨울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노랗게 물들었던 200년 된 은행나무가 이파리 하나 없이 나목으로 서 있다. 그러나 그 위엄은 어디 가지 않는 듯, 흰 대지에 우뚝 선 은행나무가 웅장함으로 압도한다. 산사를 바라보니 기와지붕 위에 소복이 눈이 앉아 있다. 대웅전, 보광전, 산신각 등 각 전각은 겨울의 고요 속에 신비롭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된 누각 보광루를 지나면 대웅전이 보인다. 보광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구조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1층은 배흘림 기둥, 2층은 원형 기둥으로 세워졌다. 특이한 공간활용이 눈에 띄는데 1층 중앙 통로다. 통로를 지나 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라가면서 서서히 자태가 드러나는 대웅전을 보는 것이 영화의 한장면처럼 드라마틱하다.
오색의 소원 글에 파묻혀 있는 듯한 삼층석탑은 겨울에 그 자태가 더 고아하다. 눈 쌓인 경내에 사람이 다닌 길 자국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대웅전 지붕은 하얗고 처마 밑에 길게 늘어선 고드름이 위협적이서 그 아래에 서면서도 혹시나 떨어지지는 않을까 무섭다. 저 고드름에 찍히면 꽤 아플 것 같다. 고드름에 담긴 겨울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다 결국에는 끝을 맺으리라.
화려한 단청 아래로 칼처럼 늘어선 고드름 너머로 치악산 산경이 드러난다. 겨울에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림같은 풍경에 말을 잊는다. 눈이 살짝 녹은 산은 수묵화다. 나무와 그 아래 하얗게 드러난 땅이 산세를 따라 굽이친다. 한국의 산사는 이렇듯 첩첩산중에 있어 그 자체만으로 그림이 되고 특히 겨울에는 분위기가 더 근사해진다.
치악산을 무대처럼 두른 눈 쌓인 산세 속에 자리한 사찰이 고즈넉하고 이곳에 찾아온 이방인은 조용히 자연이 그린 예술작품에 빠져들었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구룡사를 뒤로 한다.
올라갈 때는 무장애 데크길은 황장목 숲길을 걸었고 내려올 때는 눈을 다 치운 도로로 내려간다. 구룡사 부도군을 지나다. 부도 위에 내려 앉은 눈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서 사진에 담는다. 이 자리가 원래 사찰 예정지였다고 한다. 구룡사에서 수도한 승려 아홉 명의 사리 또는 유골을 안치한 부도군은 아홉 용의 전설과 연결되어 있다. 조금 더 내려오니 일주문이다. 일주문에 '원통문'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이는 '중생의 고놰를 두루 씻는다'는 의미다. 이 일주문을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간다.
새가 되어 내려다보는 듯한 치악산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기 충분했고 그 품에 안겨있는 듯한 구룡사는 전설 속에 들어간 것처럼 신비로웠다.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보아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눈 덮인 풍경, 2월에도 눈이 꽤 자주 온다. 강원도에 눈 소식이 있거들랑 원주 구룡사에 다녀오길.
***구룡사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구룡사로 500
033-732-4800
대중교통 이용 : 원주시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양리행 13번 버스를 타고 북원교정류장에서 구룡사행 41번 버스 탑승 후 구룡사 정류장 하차(평일, 토요일 배차간격 30~60분), 일, 공유일에는 터미널에서 구룡사까지 직행하는 41-2번 버스(하루 4회)가 운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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