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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경주 양동마을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민속마을이다.
월성 손씨(월성 孫氏)와 여강 이씨(驪江 李氏)의 두 가문에 의해 형성된 유서 깊은 양반마을이다.15세기 중반 조선시대 문신 손소(孫昭)가 양동으로 이주하고, 이번(李蕃)이 손소의 딸에게 장가들어 이곳에 정착하면서 오늘과 같은 양성 씨족마을의 틀이 갖추어졌다. 이러한 배경으로 '외손마을'이라는 별칭이 있다. 마을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조선중기 중앙의 관직을 두루 역임한 손중돈(孫仲暾)과 사후 동방5현의 한 분으로 종묘와 문묘에 동시에 배향된 재상이자 성리학자 이언적(李彦迪)이 있다.마을 북쪽으로는 설창산이, 남쪽에는 약 100m 높이의 성주봉이 있고 마을 앞으로는 양동천이 흐른다. 서쪽 산 너머에는 양동마을의 경제적 토대였던 안강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마을은 안계(安溪)라는 시내를 경계로 동서로는 하촌(下村)과 상촌(上村), 남북으로는 남촌과 북촌의 4개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지형적인 특성으로 인해마을 바깥에서는 마을의 전체적인 규모나 가옥모습을 짐작하기 어려우나, 한자로 ‘말 물(勿)’자를 거꾸로 놓은 형상이라고 전해진다. 즉, 마을 북쪽에 위치한 설창산의 산줄기가 물(勿)자 모양으로 내려와 능선을 이루고, 능선이 이루는 세 골짜기에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손씨와 이씨의 양 가문은 각각 서로 다른 골짜기에 자신들의 종가와 서당, 정자 건물을 두고 있다. 신분의 차이에 따라 지형이 높은 곳에 양반가옥이 위치하고 낮은 곳에

도펠보크

도펠보크

독일 바이에른 지역 양조장 중심의 라거 맥주로, 어두운 색상과 높은 알코올 도수가 특징이다.
보크 맥주는 본래 독일 북중부 도시 아인베크에서 만들어지던 맥주로, 한자동맹을 통해 각지에 수출되던 맥주였다. 17세기부터는독일 동남부 바이에른주의 주도 뮌헨에까지 전파되었고 하면발효 양조기술과 접목되어 라거로 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생산된다. 도펠보크는 일반적인보크 맥주보다 풍미와 알코올 도수가 강화된 제품이다. 평균 알코올 도수는 7~9% 이며, 독일어 도펠(Doppel)은 영어의 더블(Double)과 같은 의미이므로 영어권에서는 더블복(Double Bock) 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이 두 배의 알코올 도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도펠보크를 뮌헨에서 처음 제작한 곳은 파울라너(Paulaner) 양조장으로 살바토르(Salvator)가 시초가 되는 제품이다. 파울라너 양조장의 전신인 파울라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수도승들이 금식기간에 음식 대신 마시기 위해 양조했던 맥주로, 특유의 고풍미 때문에 액체 빵이라 불렸다. 훗날 양조의 주체가기업으로 넘어가고 파울라거 양조장이 설립되자 살바토르 도펠보크가 대중들에게 공개되었고 지역의 다른 양조장에서도 도펠보크를 만들게 된다.높은 도수에 색상은 어둡고 묵직하며 진한 맥주이기에 병당 가격도 높아 독일 내에서 필스너(Pils)와 같은 대중적인 맥주의 입지를 지니지는 않았다. 독일 내 대형마트나 음료전용 슈퍼마켓 맥주 코너에서 유명 브랜드들은 구매할 수 있는데, 도펠보크는독일 대중 맥주 판매처에서

르 아브르 도시

르 아브르 도시

프랑스 센(Seine)강 입구에 위치한 항구 도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대부분 훼손되었던 것을 1945년에서 1964년까지의 재건작업을 통해 복구하였다. 프랑스 건축가 페레(Auguste Perret, 1874~1954)의 주도하에 복구된 이 도시는 전통과 현대의 도시 건축을 잘 접목시키면서 콘크리트 건축의 잠재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르 아브르(Le Havre)는 영국 해협과 닿아 있는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이다. 프랑스 제2의 무역항으로 유명하다. 르 아브르는 전쟁 이후 복구 작업 중 가장 성공한 예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동시대에 지어진 몇 되지 않는 세계유산(World Heritage Site) 중 하나이다. 원래는 작은 어촌마을이었으나 침적(沈積)으로 기존의 다른 항구도시들이 그 기능을 상실하자 1517년 푸랑수아 1세(Francis Ⅰ, 1494~1547, 재위1515~1547)의 명령에 의해 새로운 항구도시로 건축되었다. 18세기부터 서인도 제도 무역으로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나폴레옹 1세(Napoleon I, 1769~1821)에 의해 제1의 해군기지가 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번영한 항구도시였던 르 아브르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대부분 폐허가 되었다. 독일군이 점령지였던 탓에 영국 공군으로부터 수차례 폭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1944년의 노르망디 전투(Battle of Normandy)로 르 아브르에서는 5천여 명이 죽었으며 만 가구 이상의 집들이 파괴되었다. 이 폐허가 된 회색빛 도시를 '프랑스의 브라질리아(Brasilia)'로 바꾼 것은 전후의 복구 작업이었다. 1945년 시작되어 1964년에 가서야 끝난 재건사업은 파괴된 도시를 전혀 새로운 도시로 다시 탄생시켰다. 페레(Augu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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