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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한가운데 있는 바위왕국, 페트라

요르단 남부에 있는 대상 도시유적.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산악도시이다. 나바테아인은 BC 7세기부터 BC 2세기경까지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활약한 아랍계 유목민으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사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에 도시를 건설한 후 생활하였다.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 등의 교차지점에 위치하여 선사시대부터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여 번영을 누렸다.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서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 도시 못지않은 도시가 있다. 협소한 통로와 협곡으로 둘러싸인 바위산을 깎아 조성된 페트라의 건물들은 대부분 암벽을 파서 만들어졌다. 이곳은 BC 1400~1200년 경 에돔과 모압의 접경지에 자리했으며, 구약에서는 '에돔의 셀라'라고 지칭하고 있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를 의미하고, 셀라도 히브리어로 '바위'를 뜻하니 페트라는 바위의 도시인 셈이다. 또한 이곳은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던 모세와 그 추종자들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통로이기도 했다. BC 7세기 무렵 유목생활을 하던 나바테아인이 페트라를 중심으로 정착하면서 나바테 문명이 세워졌다. 106년에는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땅을 빼앗겼다가, 하드리아누스가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하드리아누스의 페트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후 6세기경 발생한 지진에 의해 도시 전체가 폐허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812년 탐험가 부르크하르트가 잊혀진 페트라 도시를 발견하였고, 이후 그의 여행기를 통해 페트라가 유럽에 알려졌다. 이곳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더불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가 되었으며,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국의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이 페트라를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노래한 바 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배"(1989)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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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를 빚어 하늘을 속인 제갈량

밀가루나 메밀가루 반죽으로 껍질을 만들어 고기 ·두부 ·김치 등으로 버무린 소를 넣고 찌거나 튀긴 음식. 원래 만두는 중국 남만인(南蠻人)들의 음식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소를 넣지않고 찐 떡을 만두라고 부르며 소를 넣은 것은 교자(餃子)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소를 넣은 것만을 만두라고 부른다. 만두는 제갈량(諸葛亮)의 남만 정벌에 관한 고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심한 풍랑을 만나자 종자(從者)가 만풍(蠻風)에 따라 사람의 머리 49개를 수신(水神)에게 바치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진언했다. 이에 제갈량은 살인을 할 수는 없으니 밀가루로 만인의 머리 모양을 빚어 제사를 지내라는 꾀를 내었고 이대로 했더니 풍랑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즉 이것이 만두의 시초라는 것이다.한국에는 조선 영조 때의 사람 이익(李瀷)의 글에 만두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전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만두가 상용식이 아니고 겨울, 특히 정초에 먹는 절식이며, 경사스러운 잔치에는 특히 고기를 많이 넣은 고기만두를 만들어 먹었다.또 지금은 사라진 풍속이지만, 예전에는 큰 잔치에서 끝을 장식하는 특별음식으로 대만두(大饅頭)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호두알만한 작은 만두를 큰 만두 속에 가득 집어넣어 만든 것으로, 이 대만두의 껍질을 자르고 그 속에서 작은 만두를 하나씩 꺼내 먹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절식으로서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손쉽게 만둣국을 끓여 먹으며, 흰떡을 섞어서 끓이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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