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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 삼신불 괘불탱

갑사 삼신불 괘불탱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괘불. 1997년 09월 22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1997년 9월 22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갑사에 소장되어 있다. 이 불화는 대웅전 불상 뒤의 목곽 내에 말아서 보관하고 있다가 규모가 크고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만 꺼내 사용한다. 목곽에 붙어 있는 갑사괘불연기에 따르면 이 괘불은 1650년(효종 1)에 겸경 등이 제작하였으며 그 크기는 길이 41척 5촌, 넓이 30척으로 되어 있다. 이 그림은 비로사나, 노사나, 석가 등 삼신불(三身佛)이 진리를 설법하고 있는 장면을 도식화한 것으로 상·중·하 삼단구도를 이루고 있다. 불화의 중앙부에 비로사나삼신불이 크게 자리했고 상단에는 관음(觀音)과 대세지보살상(大勢至菩薩像), 제자상(弟子像),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 등을, 그리고 하단에는 문수보살(文殊菩薩)·보현보살상(普賢菩薩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 사리불 등을 일렬로 배치하였다. 비로사나불을 비롯한 좌우의 협시불(脇侍佛) 모두 키 모양의 광배(光背)를 갖추고 원만한 얼굴을 하고 있으나 위로 치켜 올라간 두 눈과 작은 입, 형식적인 수염 등으로 생동감이 줄었다. 체구 또한 커진 얼굴과 큼직한 손에 비하여 어깨가 좁고 마른 모양으로 다소 왜소하고 불균형스러워 보이지만 넓은 폭의 무릎으로 안정감을 잃지 않았다. 특히 비로사나불과 석가불의 육계는 큼직한 정상계주가 기둥처럼 솟아올라 약간 기이하게 보인다. 상단은 여러 성중

땀막후웅

땀막후웅

잘게 썬 그린 파파야에 피시 소스, 고추, 체리토마토, 라임, 설탕 등을 첨가하여 섞어낸 샐러드로, 라오스의 인기 있는 요리이다. 그린 파파야로 만든 샐러드이다. 라오스의 인기 있는 요리로 에피타이저로 즐겨 먹는다. 시큼한 맛과 매콤한 맛, 짠맛과 단맛을 모두 즐길 수 있으며 아삭한 식감을 갖는다. 라오스에서는 이러한 샐러드 요리를 땀솜(ຕໍາສົ້ມ)이라고 하며, 타이어로는 솜땀(ส้มตำ)이라고 한다. 이때 라오어로 ‘땀(ຕໍາ)’은 두드린, 즉 절구에 두드려 내는 요리의 과정을 의미하며, ‘솜(ສົ້ມ)’은 신맛을 의미한다. 땀막후웅은 그린 파파야로 만든 가장 대표적이고 인기 있는 땀솜으로, 또 다른 유형의 땀솜으로는 그린 바나나로 만든 땀솜인 땀막꾸어니(ຕໍາຫມາກກ້ວຍ), 가지로 만든 땀솜인 땀막캐우(ຕໍາຫມາກເຂືອ), 긴콩으로 만든 땀솜인 땀막토브(ຕໍາຫມາກຖົ່ວ) 등이 있다. 땀막후웅은 요리는 찹쌀밥이나 쌀국수, 돼지고기 껍질로 만든 요리와 함께 먹을 수 있으며 바비큐 요리의 사이드 디시로도 활용된다. 땅콩이나 말린 새우 등을 가니쉬로 올릴 수 있다. 조리법 그린 파파야는 껍질을 벗기고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잘게 썰어 준비한다. 절구에 소금, 마늘, 새눈 고추, 말린 새눈고추를 넣어 으깨고 새우 페이스트와 게 페이스트를 넣고 섞은 뒤, 피시 소스, 타마린드, 설탕을 추가한다. 여기에 반으로 자른 체리토마토,

라벤나의 초기 그리스도교 기념물

라벤나의 초기 그리스도교 기념물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 지방 라벤나주에 있는 종교 유적. 고대 로마문화와 비잔틴문화가 융합된 화려한 모자이크양식의 종교건축물들이 보존되어 있어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라벤나는 아드리아해와 접하고 포강(Po R.) 하구에 자리잡고 있어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해왔다. 5세기 초 서로마황제 호노리우스가 수도로 정하였고 493년에는 동고트왕 테오도리크(Theodoric the Great)에게 점령당하여 526년까지 통치를 받았으며, 540년 무렵에는 비잔티움제국의 총독부가 설치되었다. 이후 라벤나는 동서교역의 중심지로서 경제적인 번영을 누렸으며 고대 로마문화와 비잔틴문화가 융합된  모자이크양식의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이후 751년에는 롬바르드족[Lombard, 랑고바르드족(Langobard)]의 침입을 받아 도시가 파괴되었고 756년에는 로마 교황령이 되었다. 15세기 중반에는 베네치아의 통치를 받았으며 16세기 초에는 다시 교황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라벤나의 성당 건축은 외관은 간소하지만 실내에는 다양한 모자이크를 이용하여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이 가운데 8개의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물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라벤나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네온세례당(Baptistry of Neon, 430년 무렵), 동시대의 기념물 중 모자이크가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갈라플라키디아 영묘(Mausoleum of Galla Placidia, 430년 무렵), 500년 무렵 테오도리크왕이 세운 아리안세례당(Arian Bap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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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탈리아의 탐험가. 에스파냐 여왕 이사벨의 후원을 받아 인도를 찾아 항해를 떠나 쿠바, 아이티, 트리니다드 등을 발견했다. 그의 서인도 항로 발견으로 아메리카대륙은 유럽인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에스파냐가 주축이 된 신대륙 식민지 경영도 시작되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는 이름은 영어식 표기이며 실제 그의 이름이 이렇게 불렸을 가능성은 없다. 이탈리아명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Cristoforo Colombo)이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생하였고 1477년에 리스본에 나타날 때까지의 행적은 명백하지 않지만 상당한 학식을 지녔으며, 일찍부터 항해에 종사하였다고 전해진다. 1479년 결혼하였는데, 그의 장인이 선장이었기 때문에 해도제작(海圖製作)에 종사하였다. 이 무렵에 그는 수학자 P.토스카넬리에게서 지도(地圖)를 구해 연구한 결과 서쪽으로 항해하여도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1484년 포르투갈 왕 주앙 2세에게 대서양 항해탐험을 헌책(獻策)하였으나 희망봉 루트를 준비 중이던 왕은 그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1486년 콜럼버스는 에스파냐로 건너가 후원자를 찾았다. 그는 에스파냐 카스티야 왕조의 이사벨 여왕을 만나 그의 대담한 항해계획을 설명하였고 지원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왕실에서 거절하여 그의 항해계획이 또 실패하였다. 그는 영국, 포르투갈, 프랑스에 재차 후원을 요청하였다가 번번이 거절만 당하였다. 그의 집요한 노력으로 에스파냐의 후원을 받아내었다. 에스파냐는 카스티야와 아라곤으로 구분되어 있어,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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