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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회루

경복궁 경회루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의 서쪽 방지(方池) 안에 세워진 누(樓). 1985년 1월 8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1985년 1월 8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정면 7칸(34.4m), 측면 5칸(28.5m)이다.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이 창건된 것은 1395년으로, 이때 경회루 주위에 작은 연못이 조성되었고, 1412년(태종 12) 태종의 명에 의하여 큰 방지를 파고 경회루를 창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서 273년간 폐허로 남아 있다가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재건되었다. 방지의 크기는 동서가 128m, 남북이 113m인데, 못 안에 방형의 섬을 만들고 거기에 누를 세웠다. 이 섬에 들어가는 3개의 석교(石橋)가 있는데, 모두 하엽동자(荷葉童子)에 회란석(廻欄石)을 섬 주위까지 돌렸다. 경회루는 중루(重樓), 팔작지붕의 2익공(二翼工) 집으로, 누마루를 받는 48개의 높직한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다. 외진주(外陣柱)는 방형석주(方形石柱)이고 내진주(內陣柱)는 원형석주(圓形石柱)이다. 기둥 둘레는 아래가 넓고 위가 좁아졌는데 그 체감률이 경쾌하여 조화적이다. 이 석주 위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중루를 만들었는데, 마루 밑은 우물천장을 하여 단청을 하였고, 위쪽 마루는 외곽 퇴간부분이 가장 낮고, 그 다음 고주(高柱)와 내고주(內高柱) 사이가 1단 높으며, 내고주 안의 깊은 오간(奧間)이 또 1단 높게 만들어졌다. 이는 외국 사신을 영접하고 연회를 베풀 때 품계(品階)대로 앉는 자리 구분이다.

나시르막

나시르막

쌀에 코코넛 밀크, 판단 잎을 첨가하여 지은 밥에 삶은 달걀, 볶은 땅콩, 볶은 멸치, 삼발(sambal) 등을 곁들여낸 음식으로,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요리이다. 코코넛 밀크와 다운 판단을 넣어 지은 밥에 다섯 가지 이하의 반찬을 곁들여낸 음식으로,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요리이다. 말레이어로 ‘나시(nasi)’는 쌀밥을, ‘르막(lemak)’은 기름이나 지방을 뜻하는 것으로 요리에 사용된 코코넛 밀크를 의미한다. 20세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음식으로, 보통 아침식사로 즐겨 먹으나 점심이나 저녁으로 먹기도 한다. 과거에는 바나나 잎으로 포장하여 길거리에서만 판매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노점에서부터 일반 식당,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있는 음식이 되었다. 2009년에는 말레이시아 문화예술유산통일부에서 발표한 국가유산에 포함되었다.  나시르막에 곁들여내는 반찬은 다섯 가지 이하로 준비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볶은 멸치, 볶은 땅콩, 오이, 삶은 달걀 혹은 달걀 프라이, 삼발이 사용되며, 그밖에 오징어, 튀긴 생선, 렌당(Rendang) 등을 곁들이기도 한다.  나시르막은 문화권에 따라 그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는 특징을 갖는데, 중국계 말레이시아 문화에서는 코코넛 밀크 없이 밥을 지어 돼지고기 반찬을 곁들여 먹고 중국계 싱가포르 문화에서는 닭튀김이나 소시지, 햄, 어묵 등을 곁들여 나시르막을 먹으며, 인도계 말레이시아 문화권에서는 보통 일반적

노브고로드 역사기념물군과 주변 건축물

노브고로드 역사기념물군과 주변 건축물

러시아의 북서부 도시 노브고로드에 위치한 세계유산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지이자 최초의 수도였던 노브고로드의 역사를 보여주는 많은 건축물들이 남아있다. 11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지어진 성 소피아 대성당, 다면궁, 유리에프 수도원 등이 유명하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적은 중앙 아시아(Central Asia)와 북부 유럽 사이에 고대 무역 로가 지나는 지역인 노브고로드(Novgorod)에 위치하고 있다. '새로운 대도시'란 의미를 가진 이 도시는 9세기 러시아의 최초의 수도가 된 곳으로 볼코프 강(Volkhov River)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노브고로드에는 그 지역이 가진 중요성과 오랜 역사만큼 유서 깊은 교회와 수도원들이 많이 세워져 있다. 이 수많은 종교 건축물들은 노브고로드를 정교회(Orthodox)와 러시아 건축의 상징이자 중심지로 만들었다.성 소피아 대성당(Saint Sophia Cathedral), 다면궁(Palace of Facets), 유리에프 수도원(Yuriev Monastery), 성 니콜라스 대성당(St. Nicholas Cathedral), 수석 대주교의 집 등이 대표적 건축물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11세기 중반에 지어진 성 소피아 대성당이다. 야로슬라프 1세 (Yaroslav I the Wise, 978~1054)의 아들이었던 블라디미르 야로슬라비치(Vladimir Yaroslavich , 1020~1052) 왕자의 원조로 지어졌다. 금색과 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로 러시아 건축의 기원적인 요소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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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전투

청산리전투

1920년 10월 21∼26일,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 군과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등이 주축이 된 독립군 부대가 만주 허룽현[和龍縣] 청산리 백운평(白雲坪)·천수평(泉水坪)·완루구(完樓溝) 등지의 10여 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싸움. 3·1운동 이후 두만강과 압록강 접경지대에서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하였다. 이에 일제는 직접 일본군을 간도로 침공시켜 독립군과 항일단체를 없애고자 하였다. 간도침략에 대한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일제는 중국의 마적을 매수하여 훈춘사건[琿春事件]을 일으켰다. 훈춘사건을 구실로 일제는 대규모의 병력을 간도에 투입하여 한인사회와 독립군을 탄압하였다. 일본군의 강요로 독립군을 탄압할 수 밖에 없었던 중국 관헌들은 독립군단에게 근거지를 이동할 것을 요구하였다. 북간도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단은 1920년 8월 하순부터 새로운 근거지를 구축하고자 본영을 떠나 허룽현[和龍縣] 이도구(二道溝)· 삼도구(三道溝)의 서북방 삼림지대로 진군하였다. 이곳은 험준한 삼림지대로 일제 탄압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으며 국경과 근접하여 국내진입작전을 펼 수 있었다. 간도로 침입한 일본군 중 동지대(東支隊)는 10월 20일을 기하여 독립군에 대한 토벌작전에 돌입하였다. 이에 김좌진 장군은 백운평 고지에 독립군을 매복시키고 일본군을 기다렸다. 일본군은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21일 아침 백운평으로 들어왔다. 독립군은 일본군을 기습하였고 일본군은 완전히 무너져 전위부대 200명이 전멸하였다. 뒤이어 도착한 야마타[山田] 연대도 독립군의 공격으로 사상자가 속출하자 독립군을 협공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퇴각하였다. 북로군정서 군은 이 전투에서 일본군 2~3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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