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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스 로호

아로스 로호

쌀에 토마토, 양파, 마늘 등을 첨가하여 만든 멕시코 쌀 요리로 붉은색을 띤다. 쌀에 토마토 등을 첨가하여 지은 붉은색의 밥이다. 멕시코의 쌀 요리로, 이때 스페인어로 아로스(arroz)는 쌀을, 로호(rojo)는 ‘붉은’을 뜻한다. ‘아로스 아 라 멕시카나(Arroz a la mexicana)’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멕시칸 라이스(Mexican rice), 스패니시 라이스(Spanish rice)라고도 하나 스페인에서 대중적인 요리는 아니다. 아로스 로호는 메인 요리에 곁들이는 사이드 디시로는 물론 타코, 부리토 등에 첨가할 수 있다. 조리법 생쌀을 깨끗이 씻고 양파, 마늘, 할라페뇨는 다져 준비한다. 토마토도 작은 크기로 잘라 놓는다. 팬에 기름을 두른 뒤, 양파, 마늘, 할라페뇨를 잘 볶아준다. 채소가 부드러워지면 토마토를 넣어 잘 섞어준다. 여기에 생쌀을 추가하여 젓고 마지막으로 치킨 스톡을 부어준다. 내용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인 뒤 뚜껑을 덮고 약 15~20분간 더 끓인다. 불을 끈 뒤 10분간 밥에 뜸을 들여 아로스 로호를 완성한다. 완성된 요리는 그릇에 담아 메인 요리의 사이드 디시로 즐기거나, 콩이나 구아카몰레를 곁들여 메인 요리로도 먹을 수 있다. 영양정보 주재료인 토마토에는 리코펜(lycopene)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춰주어 동맥경화와 같은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안티과 과테말라

안티과 과테말라

과테말라에 있는 사카테페케스주(州)의 주도(州都). 옛 안티과, 과거의 수도 과테말라의 수도 과테말라 시에서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로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인근에 아구아, 아카테난고, 푸에고 등 세 개의 화산이 있어 지진과 홍수 피해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안티과 과테말라는 16세기 중반 에스파냐에 의해 건설되어 200여 년간 과테말라 왕국의 수도로 번영했다. 전성기는 17세기로 인구 7만에 중앙아메리카 예술 학문 중심지였다. 하지만 1773년 두 차례의 대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자 25km 떨어진 곳으로 수도를 옮겼는데, 그곳이 바로 현재의 과테말라 시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수도를 ‘옛 과테말라’라는 뜻의 안티과 과테말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간단히 줄여서 안티과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300년 전 식민지 개척시대의 향기 인구 3만 명의 안티과는 쉬엄쉬엄 걸어도 하루가 안 되어 다 볼 수 있는 작은 규모지만 옛 왕국의 수도답게 곳곳에 유적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지진으로 무너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과거의 건축물 사이를 걷노라면 300년 전 식민지 개척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도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중앙 공원 근처에는 시청사로 쓰이는 과거 총독부 건물, 아직도 복원공사 중인 대성당,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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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6·25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에서의 전쟁.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됨에 따라 한국은 일본의 불법적인 점령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카이로회담에서 나라의 독립이 약속은 되어 있었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에 미소 양군이 분할 진주함으로써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8월 9일 뒤늦게 대일전에 참가한 소련군은 허울 뿐인 관동군을 격파하면서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8월 13일 제25군단의 일부가 청진에 상륙하고, 8월 22일에는 평양에 진주하였다. 미군 제24사단은 9월 8일에야 인천에 상륙하여 이튿날 서울에 진주하였다. 미소 양군의 한반도 진주 목적은 일본군의 무장해제 등 전후처리에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 진주한 소련 군정당국은 남북간의 왕래와 일체의 통신연락을 단절시킴으로써 38도선을 남북을 가르는 정치적 경계선으로 만들었으며, 공산화통일이 보장되지 않는 어떠한 통일정부수립도 거부함으로써 한반도의 반영구적인 정치적 분단을 강요하였다. 한반도에서의 지배권 강화를 목표로 하는 소련의 기도와 적대정부의 출현만은 절대로 반대하는 미국의 입장이 타협될 수 없었다. 따라서 한국의 통일독립 문제의 해결은 극히 어려웠으며 이 문제를 위해 개최된 미소공동위원회도 결렬되고 말았다. 1947년 중반에 이르러 미국은 마침내 단일정부의 수립과 신탁통치의 실시를 전제로 하여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던 종래의 대한 정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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