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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훈민정음

1443년에 창제된 훈민정음에 대한 한문해설서.《훈민정음예의본(訓民正音例義本)》과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이 있다. 국보 제70호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다. 목판본으로 2권 2책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에 소장되어 있다.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에는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라고 한 《훈민정음예의본》과, 글자를 지은 뜻과 사용법 등을 풀이한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세종실록》과 《월인석보(月印釋譜)》 첫권에 같은 내용이 실려 있어 널리 알려졌으나, 후자에 대하여는 1940년 발견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의 형체에 대하여 고대글자 모방설, 고전(古篆) 기원설, 범자(梵字)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창살 모양의 기원설까지 나올 정도로 구구한 억설이 있었으나, 이 책의 출현으로 모두 일소되고 발음기관 상형설(象形說)이 제자원리(制字原理)였음이 밝혀졌다. 후자는 예의(例義)·해례(解例)·정인지 서문 등 3부분 33장으로 되었는데,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고, 해례는 정인지(鄭麟趾)·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최항(崔恒)·강희안(姜希顔)·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 집현전(集賢殿) 학사가 집필하였다. 정인지가 대표로 쓴 서문에는 1446년 9월 상순으로 발간일을 명시하고 있어, 후일 한글날 제정의 바탕이 되었다. 1940년까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臥龍面) 주하

카놈크록

카놈크록

쌀가루, 코코넛 밀크, 설탕 등을 첨가하여 만든 반죽을 작은 반원 모양으로 구워낸 디저트로, 타이의 전통적인 요리이다. 쌀가루, 코코넛 밀크, 설탕 등을 반죽하여 작은 반원 모양으로 구워낸 코코넛 팬케이크이다. 타이의 전통적인 디저트로, 노점상이나 시장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음식이다. 타이어로 ‘카놈(ขนม)’은 과자, 디저트를, ‘크록(ครก)’은 절구를 의미한다. 이 디저트는 겉은 바삭한듯 하면서도 속은 크림같이 부드러우며 달콤한 향미를 가지고 있다. 카놈크록은 달콤하게도 짭짤하게도 만들수 있고, 파, 옥수수, 타로, 새우, 가리비, 타이 홈 말리 라이스 등 다양한 토핑을 올릴 수도 있다. 한편 미얀마의 ‘몽 린 마야(မုန့်လင်မယား)’라, 인도네시아의 ‘세라비(serabi)’ 등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카놈크록과 유사한 요리를 찾아볼 수 있다. 조리법코코넛 밀크 캔의 상단에 뭉쳐있는 진한 크림 부분만 떠내 작은 소스팬에 담는다. 여기에 설탕을 첨가하여 낮은 불에서 저어준다. 설탕이 모두 녹으면 불을 끈다. 작은 볼에 옥수수 전분과 코코넛 밀크 캔 아래쪽에 남아있는 코코넛 워터를 넣어 섞은 뒤, 이것을 앞서 끓여놓았던 코코넛 크림 혼합물에 넣어 섞어준다. 푸드 프로세서에 잘게 썰은 코코넛과 쌀을 넣어 갈아 둔다. 소스팬에 따뜻하게 데운 코코넛밀크를 담아, 갈아 둔 코코넛과 쌀, 쌀가루, 소금, 설탕을 넣고 섞어 반죽을 완성한다.

절벽 위 성벽 도시, 룩셈부르크

절벽 위 성벽 도시,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의 수도 룩셈부르크에 있는 도시역사지구. 룩셈부르크는 천년의 역사를 지녔으며,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스페인·프랑스·오스트리아·프로이센이 중세 말기까지 크고 작은 분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400년 동안 20차례 이상 파괴와 재건축이 되풀이되는 수난을 겪었지만, 그 결과 유럽에서 지브롤터에 이어 제2의 요새도시를 건설하여 '북구의 지브롤터'라고 불린다. 룩셈부르크의 옛 시가지와 요새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룩셈부르크 곳곳에는 요새와 고성이 있으며, 모젤강과 알제트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대도시가 갖추어야 할 조건 또한 만족하고 있다.절벽 위에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시가지의 경관 때문에 관광도시로서도 손색이 없다. 중세시대에 백작 가문 룩셈부르크가(家)는 지기스문트의 사망으로 혈통이 단절되기까지 하인리히 2세를 비롯하여 하인리히 7세, 카를 4세 등 4명의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배출하였다. 또한 4명의 보헤미아 왕과 1명의 헝가리 왕이 이 가문에서 나오는 등 한때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였다. 벤첼의 성벽은 보헤미아왕 벤첼 2세가 15세기 초에 쌓은 것으로, 수용인원이 8천 명이 넘는다.그랜드 두칼 궁전은 옛 행정 중심지로,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대리석 건물이다. '작은 성'이라는 뜻의 룩셈부르크는 게르만과 라틴 두 민족 사이에서 이들 두 문화의 영향을 동시에 받으면서 발전하였다. 돌담에 새겨져 있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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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괭이

돌괭이

돌로 만든 괭이. 특히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괭이모양 석기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흔히 쓴다. 괭이는 땅을 파는 데에도 쓸 수 있지만 그보다는 씨를 뿌리기 위해 골을 내거나 땅을 평평하게 고를 때, 그리고 흙덩이를 잘게 부술 때 알맞은 농사도구이다. 한반도의 신석기청동기문화 유적에서 출토되는 괭이는 대체로 날이 넓고 어깨가 좁은 이른바 곰배괭이 형태이다. 그런데 흔히 돌괭이로 분류하는 석기는 나무자루를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 호미·따비·삽 등으로 그 쓰임새가 달라질 수도 있다. 평안남도 온천군의 궁산(弓山)유적에서는 돌괭이와 뿔괭이가 함께 발견되었다. 이로써 신석기시대 전기부터 괭이의 쓰임새가 다양하고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밖에 함경북도 선봉군 서포항유적, 함경북도 무산군 범의구석유적, 경상남도 통영시 상노대도유적 등에서도 신석기시대의 곰배괭이 형태의 돌괭이가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에는 나무 농기구를 많이 만들었으므로 나무괭이도 적지 않았겠지만, 돌괭이가 반달돌칼·돌낫·돌보습 등과 함께 자주 쓰였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함경북도 회령시 오동유적, 경상남도 진주시 어은유적·옥방유적 등이 있다. 대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에는 따비와 괭이로 밭고랑을 일구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괭이의 재질이 나무인지 돌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돌괭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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