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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나뻿

카오나뻿

밥 위에 구운 오리고기와 소스를 얹어 먹는 음식으로, 타이의 요리이다. 밥 위에 구운 오리고기를 소스와 함께 얹어낸 덮밥으로 중국 요리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중국식 타이요리이다. 태국의 노점상이나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뉴이다. 타이어로 ‘카오(ข้าว)’는 쌀을 의미하고, ‘나(หน้า)’는 겉, 표면을 의미하며, ‘뻿(เป็ด)’은 오리를 뜻한다. 여기에 ‘굽다’를 뜻하는 ‘양(ย่าง)’을 붙여, ‘카오나뻿양(ข้าวหน้าเป็ดย่าง)’이라고도 한다. 한편 카오나뻿과 같이 흰 쌀밥 위에 오리고기를 올려낸 요리는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주로 동남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다. 보통 절인 생강이나 슬라이스한 오이, 실란트로 등을 곁들여 먹으며 오리 육수로 만든 수프를 곁들이기도 한다.   조리법 깨끗하게 손질한 통 오리고기를 준비한다. 오리고기의 껍질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오리고기의 껍질 아래에 손가락을 넣어 지방을 제거한다. 페이퍼 타올로 고기 표면의 물기를 제거한다. 간장 소스에 팜슈거와 꿀을 넣고 녹인다. 이것을 오리고기 표면에 바르고, 소스가 마를때 쯤, 한 번 더 소스를 바른다. 오븐에 오리고기를 넣고 약 1시간가량 구우면 완성된다. 고기가 완전히 구워지기 5분 전에 오븐의 온도를 올려주면 고기의 껍질이 바삭해진다.  소스팬에 하이센장, 물, 중국 위스키를 담아 끓여준다

포블레트 수도원

포블레트 수도원

스페인 타라고나주의 포블레트에 있는 수도원.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카탈루냐 지방의 한적한 골짜기에 있는 수도원과 성채가 결합된 유일한 건축물이다. 시토회의 전형적인 수도원 건축 가운데 하나로서, 1149년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베렌게르 4세가 건설하였다. 중세에는 군주들의 보호를 받았고 전성기를 누린 14세기에는 근처에 있는 산테클뤼우수도원·발보나수도원과 함께 '시토회의 3각형'이라고 일컬어졌다. 수도원 앞에는 커다란 앞뜰이 펼쳐져 있다. 12세기에 처음 세운 회랑은 15세기에 개축하였는데, 로마네스크양식의 기둥머리와 고딕양식의 아치가 결합한 형태로 되어 있다. 회랑 가운데에는 분수가 있고 그 주변에 집회실·접견실·식당·부엌·도서실 등이 자리잡고 있다. 회랑 남쪽에는 성당이 있고 북쪽에는 1185년에 지은 병원이 있다. 성당은 로마네스크양식으로 건설하였는데, 내부에는 1529년 다미안 포르멘이 제작한 제단 장식벽으로 꾸민 주제단이 있다. 성당 교차부에는 카탈루냐 아라곤 왕실의 역대 왕들과 귀족들의 무덤이 있다. 수도원 주위에는 14세기에 만든 3중 성벽을 둘렀으며 방어용 탑과 '왕궁의 문' 등이 세워져 있다. 1991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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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6·25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에서의 전쟁.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됨에 따라 한국은 일본의 불법적인 점령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카이로회담에서 나라의 독립이 약속은 되어 있었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에 미소 양군이 분할 진주함으로써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8월 9일 뒤늦게 대일전에 참가한 소련군은 허울 뿐인 관동군을 격파하면서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8월 13일 제25군단의 일부가 청진에 상륙하고, 8월 22일에는 평양에 진주하였다. 미군 제24사단은 9월 8일에야 인천에 상륙하여 이튿날 서울에 진주하였다. 미소 양군의 한반도 진주 목적은 일본군의 무장해제 등 전후처리에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 진주한 소련 군정당국은 남북간의 왕래와 일체의 통신연락을 단절시킴으로써 38도선을 남북을 가르는 정치적 경계선으로 만들었으며, 공산화통일이 보장되지 않는 어떠한 통일정부수립도 거부함으로써 한반도의 반영구적인 정치적 분단을 강요하였다. 한반도에서의 지배권 강화를 목표로 하는 소련의 기도와 적대정부의 출현만은 절대로 반대하는 미국의 입장이 타협될 수 없었다. 따라서 한국의 통일독립 문제의 해결은 극히 어려웠으며 이 문제를 위해 개최된 미소공동위원회도 결렬되고 말았다. 1947년 중반에 이르러 미국은 마침내 단일정부의 수립과 신탁통치의 실시를 전제로 하여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던 종래의 대한 정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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